“또 시작이네, 얼른 창문 닫자.”
오늘도 거슬리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중국 베이징에서 평일 해질 무렵이면 반복되는 패턴이다. 주변에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차도에는 외제차가 넘쳐나 겉보기에는 번지르르한 동네다. 하지만 퇴근시간만 되면 뭐가 그리 바쁜지 운전자들은 앞차를 재촉하면서 빨리 가라고 성화다. 반대쪽에서는 중앙선이 대수냐는 듯 앞다퉈 넘어서며 각자의 목적지로 돌진한다.
지난해 중국에 온 이후 홍콩 출장만 네 번 다녀왔다. 무심코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차 싶을 때가 있었다. 2차선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서도 시민들은 신호를 기다리며 요지부동인데 혼자 몇 걸음 앞으로 슬금슬금 나가려다 뒷걸음질치곤 했다. 베이징에선 드넓은 8차선 도로에서도 서로 먼저 가려는 보행자와 차량이 뒤엉키는 경우가 적지 않은 터라 순간 방심했나 보다.
저마다의 종교적 신념과는 별개로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숭고한 가치가 있다. 바로 국가의 3요소인 주권ㆍ영토ㆍ국민이다. 중국이 주권적 권리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홍콩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지키라고 항변해본들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급기야 “보안법은 홍콩의 바이러스를 잡기 위한 백신”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꼬박꼬박 신호를 지키던 홍콩의 건널목도 경적의 굉음으로 뒤덮일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8월 말 홍콩 시위 현장에서 휠체어를 탄 50대 여성을 만났다. 6월 9일 103만명을 신호탄으로 일주일 후에는 200만명, 한달 뒤에는 17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복 홍콩’을 외치고 ‘홍콩에 영광을’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였다. 시민들의 기세에 눌린 경찰은 극약처방으로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초유의 조치로 맞서며 시위대의 집결을 막으려 했다. 성냥불이 삽시간에 산불로 번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서 지켜보며 내 미래를 맡기는 게 더 위험하죠. 나부터 움츠리면 누가 밖으로 나올까요.”
다시 6월이다. 베이징에는 한낮 더위가 연일 35도를 훌쩍 넘어서는 폭염이 기승이다. 홍콩의 여름나기는 훨씬 더 고될 것이다. 그 끝 어딘가에서 마주할 선선한 가을바람이 아른거린다.
김광수 베이징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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