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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군함도 조선인 차별 없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약속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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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군함도 조선인 차별 없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약속 뒤집어

입력
2020.06.14 23: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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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업유산센터 일반 공개… 섬주민 일방적 증언들로 노역 정당화

도쿄 신주쿠구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 1전시실에 군함도(하시마) 탄광을 소개하는 멀티스크린 화면이 설치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도쿄 신주쿠구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 1전시실에 군함도(하시마) 탄광을 소개하는 멀티스크린 화면이 설치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일본 정부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홍보하는 전시 시설에 “군함도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섬주민 증언을 다수 포함시켜 한일 과거사 갈등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정보센터 설립 등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던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뒤집는 내용 일색이기 때문이다.

14일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두고 한일 언론에 공개한 도쿄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당시 일본의 경제발전을 선전하는 데 주력했다. 강제노역과 관련해선 입구 초입의 65인치 스크린 7개를 이어 만든 군함도(하시마 탄광) 영상과 3전시실의 주민들의 증언 등 전체 전시물의 10%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문제는 강제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겠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전시 내용이다. 어린 시절 군함도에 거주했던 재일 조선인 2세 등 섬주민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일방적으로 미화한 것이다. 실제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왜 때리겠느냐”, “조선인들이 우유를 정기적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었다” 등 조선인 노동자들이 가혹한 상황에 처했던 사실과는 정반대의 증언들로 채워졌다. 영화 ‘군함도’를 봤다는 한 일본인의 “모두 거짓말이라 화가 났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패전 후인 1946년 군함도에 들어간 주민이었다.

도쿄 신주쿠구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 3전시실 벽면에 강제노역에 대해 증언한 군함도 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도쿄 신주쿠구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 3전시실 벽면에 강제노역에 대해 증언한 군함도 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대만 출신 노동자의 급여ㆍ상여금 봉투와 명세서도 전시됐다. 일본인 외에 조선ㆍ대만 출신 노동자에게도 정상적으로 급여를 지급했음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다. 1939년 국민징용령 등을 연대별로 정리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전문도 적어뒀다. 강제동원이 당시 합법이었으며 보상문제도 해결됐다는 자국 주장을 강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를 맡은 가토 고코(加藤康子) 센터장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내용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희생자는 ‘당시 상황의 희생자’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ㆍ대만ㆍ일본인 모두 포함된다”며 “학대를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의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에 정면 배치된다.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당시 한국 정부의 반발에 부딪히자 “일부 시설에서 많은 조선인 등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보센터 개관으로 확인된 건 국제사회와의 약속과 달리 자국에 불리한 역사는 지우려는 의도뿐이다. 등재 결정에 앞서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 설치를 강조했으나 결국 강제노역을 정당화하는 시설로 꾸몄기 때문이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다수 조선인 노동자들이 무도한 대우를 받았다는 역사를 ‘자학사관’으로 보고 반론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면서 “과거의 사실을 덮으려는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14일 도쿄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내부. 센터에 소개된 메이지시대 석탄 사업.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14일 도쿄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내부. 센터에 소개된 메이지시대 석탄 사업.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한편, 센터 측은 이날 내외신 취재 인원을 한ㆍ일 각 4명씩으로 제한했다. 자유로운 관람보다 30분 가량 홍보 영상을 시청한 후에야 안내를 시작했다. 반면 취재진 안내를 맡은 직원이 14명이 배치됐고, 내부 영상이나 사진 촬영은 허가하지 않았다. 취재진에 배포된 72쪽짜리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란 제목의 책자와 이를 요약한 21쪽짜리 팸플릿에는 제동원 피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정보센터는 지난 3월 31일 개관식을 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즉시 휴관하면서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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