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환자 낀 ‘백내장 보험사기’ 여전히 활개
“시력교정까지 실손으로 다 보장” 믿으면 환자도 ‘사기공범’
고령화 속 노인질환 급증 뻔한데 인식개선, 방지책 시급
#. 70세 남성 A씨는 작년말 백내장 수술을 위해 강남의 유명 안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A씨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는지 먼저 묻더니, “백내장 수술뿐 아니라 시력교정(다초점렌즈 삽입술)도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권했다.
A씨는 “270만원짜리 다초점렌즈값도 공짜”라는 병원의 꼬임에 끌려, 권하는 대로 수술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A씨는 이 병원이 연루된 보험사기의 공범으로 경찰에서 출석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병원이 백내장 검사비를 렌즈값과 바꿔치기 해 처리한 것이었다.
한때 실손보험 사기에 단골 치료법으로 악용돼 사법처리와 제도개선까지 이뤄졌던 백내장 수술이 여전히 일부 병ㆍ의원의 보험사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은 고령화로 노인질환이 급증하는 추세를 틈타 주로 노인들을 공략하고 있는데, 특단의 인식개선과 방지책 없이는 노인들의 사기 전과와 사회적인 실손보험 피해가 점증할 게 뻔한 상황이다.
◇렌즈비 보험 처리 안 되자 검사비 늘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A씨 같은 노년 환자들이 다초점렌즈 삽입술이 실손보험으로 보장되지 않음에도 보장된다고 믿고 실손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사기 공범으로 엮이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권고에 따라 2016년 1월 이후 실손보험은 다초점렌즈 비용은 보상하지 않는 것으로 약관이 수정됐다. 그런데 일부 병ㆍ의원이 약관 수정 후 렌즈 가격은 최대 4분의 1까지 인하하는 대신, 실손보험으로 보장되는 백내장 검사비 항목을 추가하거나 가격을 대폭 올리는 방식으로 비용을 늘렸다.
극단적인 예를 보면, 서울 소재 A안과는 렌즈비를 273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내리면서, 반대로 5만원이던 검사비는 340만원으로 67배나 올렸다. 똑같은 백내장 수술을 하는 종합병원에서는 이들 비용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상품 고쳐도 매년 80% 뛰는 백내장 보험금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다초점렌즈를 실손보험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음에도 백내장 관련 보험금 지출은 매년 80% 가량씩 급증하고 있다. 백내장 수술 건수 증가로 건강보험금 지출도 연 12%씩 늘고는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실손보험금 지출 증가세는 훨씬 가파르다.
최근 렌즈값을 검사비로 바꿔치기 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백내장 관련 보험금 지출에서 렌즈값 관련 비중은 여전히 절반이나 된다. 상품 약관이 개정된 2016년 1월 이전 계약에서는 계속 렌즈값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안과에는 아예 전담 상담실장까지 있어, 먼저 실손보험 가입시기를 묻고 수술비용을 컨설팅해 준다”고 설명했다.
예전엔 백내장 환자가 아닌데도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처럼 꾸미고 시력교정을 해준 뒤 보험금을 타는 이른바 ‘생내장’ 수술 문제도 심각했는데,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여전히 이를 막기 어렵다는 게 보험사들의 우려다.
◇병원-환자 ‘도덕적 해이’, 출구가 없다
백내장을 둘러싼 실손보험금 누수에 대한 우려는 기본적으로 “쓰는 만큼 보장하는” 실손보험 상품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의사와 환자들은 건전한 상식과 공동체 의식에 기반해 이런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얌체 같은 이용’과 아예 보험사를 속이는 사기행위는 근절되지 않는 게 문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전국 안과 1,600여개 중 약 6%에 불과한 100여개 안과가 백내장 비급여 치료비의 80% 넘게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걸 감안하면, 향후 이런 종류의 보험사기는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을 부르고, 결국 혜택을 보지 못한 모든 보험가입자에게 전가된다.
전문가들은 보험료 차등제 도입 등 상품개선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제한 없이’ 팔린 상품이 대다수인데다, 기존 가입자를 새 상품으로 유도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에 일부 보험사는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이유로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거나 판매 대상을 제한하는 극단적인 대응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실제 법적 문제가 있는 사기부터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비급여 진료비 관리가 실손보험 생존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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