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 장교를 배출하는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서 첫 시크교도 졸업생이 나왔다. 여전히 졸업생 다수가 백인 남성이지만, 민족과 종교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문호를 열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소위 계급을 단 1,107명의 졸업생 가운데 종교적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은 인도계 미국 여성인 시크교도 안몰 나랑(23)이다. 웨스트포인트 218년 역사에서 시크교 교리를 준수하는 신자 졸업생이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세기 인도에서 발흥한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융합된 종교로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종교적 복식은 과거 미군 내에서 허용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시크교 신자가 미군에 복무하기 위해선 머리와 수염을 잘라야 했고 터번도 쓸 수 없었다. 실제 그동안에도 웨스트포인트 졸업생 중 시크교 출신이 있었지만 시크교의 복식을 준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시크교 출신으로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심라트팔 싱이 그해에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군 복무 중에도 터번을 착용하고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는 웨스트포인트 재학 중에도 시크교 교리를 ‘준수’하려는 신자가 입학할 수 있는 길을 텄고 마침내 이날 명실상부한 시크교도 졸업생이 나온 것이다.
나랑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믿기지 않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여성 시크교도’는 내 정체성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나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 조그마한 역할을 한다면 아주 멋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교 시절 하와이의 진주만 국립기념관을 방문해 영감을 받고 육사에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미국 조지아주(州)에서 태어난 인도계 이민 2세 나랑은 “앞으로 군에서 공중 방어시스템 분야의 경력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나랑은 기초 장교 훈련을 받은 뒤 일본 오키나와의 카데나 공군기지에서 복무할 예정이다.
나랑이 웨스트포인트의 새 역사를 쓰는 데 크게 공헌한 육군의 싱 대위는 이날 “나랑이 장벽을 깨고 목표를 이루는 것을 보게 돼 매우 기쁘다”며 “군이 시크교를 더 많이 수용하는 건 시크교도뿐만 아니라 미군의 다양성과 전투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포인트 졸업생의 다수는 여전히 백인과 남성이다. 올해 졸업생 중 소수인종 비중은 흑인 12%, 아시안 9%, 히스패닉 9% 등이며, 여성은 230명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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