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피의자 측 시간 끌기에 악용될라” 우려
복잡한 사건을 짧은 의견서로 풀어내는 것도 한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 소집 신청으로 심의위 등 외부인이 참가하는 위원회들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를 둘러싼 고민이 커지고 있다. 피의자들이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 등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이 보낸 이 부회장 사건 심의위 소집요청서를 접수하고 12일 심의위 소집을 결정했다. 앞서 이 부회장 등은 “검찰의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심의위 소집을 신청했고 11일 열린 중앙지검 부의심의위에서 이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에 심의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은 법조계, 학계 등 외부 전문가 중 15명을 추첨해 심의위를 열 예정이다. 과거 사례를 고려하면 심의위는 2~4주 내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부의심의위가 소집을 의결함에 따른 결과지만, 일각에서는 심의위의 실익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기소 방침을 거의 굳힌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들이 기소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 검찰 결정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 경영권 승계 사건이 총 20만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이 쌓일 정도로 복잡하고 법률가들에게도 간단하지 않은 자본시장법 사안인 점도 ‘무용론’의 근거로 꼽힌다. 30쪽 분량의 의견서만 참고할 수 있는 심의위원들이 복잡다단한 검찰 수사의 적절성을 명쾌히 판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늘어날 소집 신청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 한 부장검사는 “부의심의위나 심의위 때마다 의견서를 준비해야 하는데 수사 내용을 짧고 쉽게 정리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소를 앞두고 의도적으로 심의위 소집을 신청해 막바지 수사를 지연하려 들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관할 검찰청 시민위원장은 사건관계인의 신청이 심의대상(수사 계속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등)이 아닌 경우나 동일한 사유로 반복해 신청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부의심의위를 열어야 한다. 특히 구속 피의자일 경우 빠듯한 구속 기간 안에 사건을 처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일부 검사들은 법리가 복잡한 사건들은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한 부장검사는 “(일반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복잡한 사건들은 배제할 때가 많다”며 “심의위원들이 국민참여재판과 달리 전문가로 구성된다지만 방대한 수사기록을 30쪽 분량 의견서들로만 요약해 듣고 판단하는 건 또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심의위 설치를 권고하는 검찰개혁위원회 의결과정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도 페이스북에 “이런 전문성이 요구되는 복잡한 사건을 예정하고 설치 권고에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반대로 이참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소배심제(일반 시민이 형사재판 소추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도입을 고민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지금처럼 대검 예규로 운영되는 위원회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견해와 외국 입법례를 반영해 심의에 올리는 사건 종류, 절차, 심의 기간 중 수사 계속 여부 등에 대해 법률로 세세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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