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9명, 국회서 플로이드 추모 퍼포먼스
성소수자 포함 차별금지법 입법엔 “나중에 논의”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10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9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이 같은 피켓을 들고 섰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묵념 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무경 의원이 기획한 퍼포먼스엔 김예지 김용판 윤주경 이영 이종성 전주혜 조태용 허은아 의원이 함께 했다.
이들이 공동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는 차별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보수 진영의 목소리와 결이 달랐다. 한 의원은 헌법이 규정한 행복추구권을 언급하면서 “모든 종류의 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행위다. 인류 보편 가치인 인간의 존엄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외쳤다. 의원 9명은 각각 한쪽 무릎을 꿇은 채 8분 46초간 침묵 시위를 했다.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이 짓눌려 숨진 것을 상징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11일 의원 9명에게 정말로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지’를 물었다. 이들이 힘을 보태면 14년째 입법 시도 단계에서 좌절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선 동력을 얻을 수 있을 터다. 그러나 9명 전원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활동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병력, 외모,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반대론자들은 성 정체성 부분을 문제 삼는다. 이에 17, 18, 19대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됐으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개신교계 등의 저항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선 발의도 하지 못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법안에 이름을 올릴 공동 발의자 10명을 구하지 못한 탓이다.
10일 로텐더홀 시위에 참여한 의원들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해 어김없이 “나중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이들은 금지해야 할 차별을 지역, 학력, 성별, 장애인, 인종에 대한 차별에 국한했다. 한무경 의원은 “시위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이지,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21대 국회에 화두를 던진 수준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머지 의원들도 “차별금지법 취지에는 동의하나,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라는 뜻을 견지했다.
통합당에서 ‘차별 금지’ 목소리가 나온 것 자체로 의미가 깊을 수 있다. 그러나 시위 참여 의원들이 차별 이슈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한계로 남았다. ‘차별을 차별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예지, 이종성 의원도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회의적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김 의원은 시위에서 ‘장애인 차별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었다”며 “장애인 문제 전반에 관심이 있어서 참석했다”고 거리를 뒀다. 이 의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어서 차별금지법 입법에 의정활동 목표를 두고 있진 않다”고 했다.
물론 적극적인 목소리도 일부 나왔다. 허은아 의원은 “차별금지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당론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계속해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용 의원도 “차별 금지가 통합당의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고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차별과 혐오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다”며 “보수 정당이 차별 금지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입법 활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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