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역학조사 결과 토대로 검사 대상자 선정
밀접접촉자 아니면 안 받아도 된다는 의미
전문가 “검사 대상자 늘리거나 속도 높여야”
직장인 박정석(가명ㆍ33)씨는 지난 주말부터 내내 자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가 근무하는 서울 강서구 사무용 건물에서 감염자가 무더기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건물 9층에 입주한 SJ투자회사 콜센터에서는 7일부터 10일까지 직원 등 9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16만원의 검사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보건소에 무료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그때마다 밀접접촉자라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검사 대상자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증상이 있다면 자비로 검사를 받아달라는 권고가 뒤따랐다. 박씨는 “기준을 완화하면 검사 대상자가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는 보건소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엘리베이터에서 환자의 비말과 접촉했을지 모른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환자가 나타나기 이전에 출근ㆍ점심시간에는 2대뿐인 엘리베이터가 항상 가득 찼고 대화도 많았다”라고 우려했다.
신종 코로나가 방역당국이 환자를 발견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퍼지면서 박씨처럼 무료 검사를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소한 집단발병 지역을 방문했거나 확진환자와 동선이 겹쳤다면 무료로 검사를 받게 해달라는 요구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무증상자 대상 무료검사는 첫 신청일이었던 8일, 오전에 첫 시행대상 1,000명의 접수가 마감될 정도로 신청자가 몰렸다. 방역당국은 역학조사에 따라 필요성을 점검해 무료 검사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학계에서는 환자 발견 속도를 높이려면 무료 검사 대상을 늘리거나 검사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무료 검사를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신종 코로나 임상증상이 있어야 한다. 11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무료 검사 대상자 선정 기준은 △환자와 접촉해 14일 이내에 신종 코로나 임상증상이 나타났거나 △의사 소견에 따라 임상증상으로 신종 코로나가 의심되는 경우 △국내 집단발생과 역학적 연관성이 있으며 14일 이내에 증상이 나타난 자 등이다. 또 환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통해 밀접접촉자를 분류하고, 자가격리된 상태에서 증상이 나타날 경우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방역당국은 박씨처럼 집단발병이 발생한 건물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도 밀접접촉자가 아니라면 검사를 받을 필요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권준욱 중대본 부본부장은 “역학조사를 통해서 동선이나 전파경로, 환자 발생상황에 따라 개별 공간(건물) 전체가 다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면서 “현장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안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승강기나 계단 이용 상황 등을 고려해 해당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 전원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 경우에 건물 방문자 전체에게 무료 검사를 요청한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새로운 확산 진원지로 떠오른 서울시 관악구의 건강용품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의 경우, 중대본은 해당 건물(석천빌딩)을 방문한 사람은 증상 유무와 관계 없이 진단검사를 받아달라고 지난 6일 당부했다.
학계에서는 방역당국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고 있는 만큼, 검사 대상자를 늘리거나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검사량이 많으면 현장 인력이 지치는 만큼 역학조사를 통해 필요한 사람을 중심으로 검사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무증상이거나 증상이 미미한 환자는 역학적 연관성을 따지다가는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고비용 유전자검사(PCR) 위주 검사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면서 “(기온이 높아져) 선별진료소의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만큼 정확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된다면 30분 이내에 결과가 나오는 신속검사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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