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산 죽미령 전투평화공원 가보니
#1950년 6월 30일 특수임무를 띤 스미스 중령의 부대(스미스부대) 540명을 태운 C-54 수송기가 부산 수영비행장에 착륙했다. 이들은 하루 뒤인 7월 1일 오후 8시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고, 나흘 뒤인 같은 달 5일 오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오전 8시 당시 최강이라고 불린 T-34전차 36대와 싸웠지만 4대를 파괴하는데 그쳤다. 이어 오전 11시 45분 5,000여 명의 북한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스미스 중령은 오후 2시 30분 철수명령을 내렸다. 6시간 15분 만에 유엔군의 패전으로 끝났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군(미군)이 북한군과 벌인 첫 교전이자 패한 전투로 기록된 ‘오산 죽미령 전투’ 얘기다. 비록 전투에서 패했지만 전략적인 면에서는 성공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죽미령 전투를 통해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을 확인, 재정비기를 갖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10여일 늦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우리는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는 현재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이 들어서 있다. 13만4,000여㎡규모에 2개의 전시관과 유엔군 초전기념비, 거울연못과 더글라스 C-54 조형게이트, 죽미령 전망대 등 다양한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참전했던 전투기와 탱크도 자리하고 있다.
10일 오전 찾은 죽미령 평화공원(경기 오산시 경기대로742) 광장.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스미스 평화관’ 등 전시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 중이었지만 오산시의 협조를 얻어 취재가 이뤄졌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3층 중 2층에 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스미스 부대의 참전 과정과 스미스 부대원이 기증한 군복과 인식표 등 당시의 기록과 유물로 채워졌다. 스미스 부대 540명 부대원의 명판이 있는 추모공간과 ‘6시간15분간 죽미령 전투’를 4분여 정도의 시뮬레이션 영상으로 만든 ‘죽미령 전투’ 영상관이 눈길을 끈다.
바로 옆 건물에는 다음달 5일 정식 개관하는 ‘스미스 기념관’이 있다. 3층부터 관람을 시작해야 하는 기념관은 스미스 중령의 1인칭 시점에서 시작한다. 참전과정의 스미스 중령 심경을 담은 영상 관람 후 부산으로 향하는 더글라스 C-54 수송기 내부가 재연된 코스를 만났다. 가상현실을 담은 고글을 쓰면 당시 수송기에 올라탄 참전용사들의 개인적 심경과 각오 등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부산역에서 대전으로 가는 기차안 모습이 꾸며졌다. 열차가 출발하면 양쪽 창문너머로 부산시가지와 논과 밭, 대전의 시가지가 나와 실제 열차에 탄 느낌을 준다.
열차를 통과하면 스미스 부대가 죽미령에 도착해 진지를 구축하는 모습, 적 전차가 나타나면서 시작된 교전(조명 및 사운드), 스미스 부대원들의 증언 영상 등으로 이어진다. 이후 전시관은 ‘도움받는 대한민국에서 도움을 주는 대한민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오산시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죽미령 전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 유엔군 참전이지만 ‘패배한 굴욕적인 전투’라는 오명이 아닌 ‘승리한 전쟁의 초석이 된 전투’, ‘전략적으로 승리한 전투’라는 이미지를 후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특히 ‘죽미령 평화공원’을 우리나라 대표 현충시설인 서울 전쟁기념관, 천안독립기념관, 부산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국내 4대 현충시설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죽미령 평화공원은 단순히 전적지가 아닌 한반도 평화와 자유수호의 첫 번째 역사가 되는 시작점”이라며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평화문화전당의 명소로 찾아오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산=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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