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지식디자인연구소 소장ᆞ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검찰ㆍ국회ㆍ언론 3대 개혁 필요하지만, 약자의 삶 해결하는 개혁 우선
불출마 선언 1도 섭섭하지 않다… 해보니 정치인에 의한 개혁은 한계
이철희 지식디자인연구소 소장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것이 “1도 섭섭하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이제는 ‘독립 언론인’이라면서도 민주당 비판에는 말을 아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다음날 ‘정치를 바꿀 수 없다’고 비관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이 소장에게 민주당이 나아갈 바를 물었다.
_불출마 선언하며 ‘정치를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뭐가 문제인가.
“내가 부족해서다. 내가 투지를 갖는다고 한국 정치가 달라질 것 같지 않고, 그런 권력 의지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처럼 유권자와 정치인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것은 문제다. 선거 때만 잠깐, 국회의원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 13일 정도만 만나 내가 왜 당선되어야 하는지 얘기해서야 정치가 좋아질 리 없다. 4년 내내 내가 왜 당선되어야 하는지 유권자를 설득하고, 유권자도 자기 의사를 피력하는 일상의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의원 정수를 묶어 놔서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가 너무 많다. 그런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에서 이야기를 해 보니 정당을 막론하고 대부분 의원들이 (선거운동 제한을) 왜 바꾸냐고 한다.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선거제도는 정당에 따라 득실이 있다면 선거법은 현역이냐 아니냐에 따라 이해가 나뉘니 더 철벽이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너무 거창한 이유로 불출마한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정치인에 의한 정치 개혁은 한계가 있다. 정치 밖에서, 시민 또는 시민사회에 의한 정치 개혁을 해야 바뀌겠다고 생각했다. 국회에서 내 능력으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밖에서 그런 에너지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_시민사회에 의한 정치 개혁이라면?
“유럽 국가들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는 격렬한 내부 투쟁이 있었고 어떤 나라는 내전까지 겪었다. 투표권도 약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지 선의로 주어진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제도 변화를 너무 정치 협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거칠게 말해 유권자, 시민이 자신의 힘으로 제도 개혁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치권 너희들이 잘 해 봐’ 이 정도다. 결국 사회가 발전하려면 정치가 좋아져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면 시민이 바꿔야 한다. 제도 개혁 운동을 해야 한다. 가령 선거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을 특정해 놓고 나머지 기간에 막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 법 체계이고, 조봉암의 진보당이 힘을 키워 나가니 그걸 막으려고 도입한 제도다. 이걸 아직도 우리가 갖고 있다. 나도 386 세대에 속하지만, 386 정치인에게 화 나는 게 이런 거다. 왜 이걸 안 없애는 거냐.”
_왜 안 없애는 건가.
“직접 토론해 보지 않아 모르지만, 자기 편하자고 그런 것 아닐까. 일본 군국주의 잔재인데 왜 안 없앨까. 독재시대 잔재를 왜 안 없애나. 제가 국방위 가서 보니 위수령이 아직도 있더라. 내 자랑 같지만, 그 문제를 제기해서 작년에 없애는 걸로 국무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낡은 잔재를 하나씩 들어내야 하는데 결국 법, 제도를 고쳐야 한다. (386들이) 그런 걸 안 했다고 본다. 별로 한 것도 없이 나이 들고 있으니 정치 그만하라고 얘기했는데 그 말 했다가 욕 엄청 먹었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너만 잘났냐’ ‘이제 일 좀 하려는데 왜 그러냐’ 눈총을 많이 받았다.”
_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진영 내에서도 개혁-수구가 있는 듯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당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토론이 활발해야 하지 않나. 177석 거대 여당이라면 더욱 당내 민주주의가 중요할 것 같다. 총선 이후 민주당이 열린우리당 때 과오를 돌이키며 단일 대오를 강조했는데, 과도하게 ‘원 팀’ 스피릿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공수처법 기권을 이유로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한 것도 구시대적 관행 아닌가.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도 당내 토론이 없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징계를 꼭 악습, 구태라고 보진 않는다. 미국 정당은 규율이 약하고 의원 개개인의 독자성이 강한데 그러다 보니 이익집단에 약하다. 있는 자들, 강자들의 로비가 더 세다. 개인 정치가 득세하는 구조에서 계층적 문제 의식이나 복지 정책이 실종된다. 유럽의 비례대표제가 좋은 점은, 정치의 기본 단위가 개인이 아닌 정당이라는 점이다. 유럽 정치는 덜 소모적이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져 있다. 정당ᆞ개인 중심 정치의 성과를 놓고 보면 정당 중심 정치가 더 효율적이라 본다.
당론에 반대하는 정치인이라고 다 칭송받는 것도 아니다. 누구는 칭찬받지만 누구는 욕을 먹는다. 나는 그런 평가가 너무 편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정당을 보호하고 세금으로 지원한다. 정당이 소속 구성원에 대해 아무 제어력이 없다면 왜 정당을 보호하고 지원하나. 정당이 개인의 소신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나는 민주당이 용인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리석은 건, 이미 낙천해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에게 또 징계를, 김두관 의원 말대로 이중 징계를 할 이유는 없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금 전 의원도 자기 소신에 대해 당이 징계하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책임지면 되는 것이지, 마치 징계가 잘못인 것처럼 주장하면 당론 따른 다른 사람은 다 바보인가.
칼럼 고발 역시 바보 같은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당 입장에서는 특정 정파에 속한 필자가 민주당만 찍지 말라고 쓰는 것이 진정한 비판으로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칼럼을 게재한 신문에 문제를 제기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언론사도 고민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_왜 그런 일이 민주당에서 반복되나. 일부 국민은 민주당이 오만하고 독선적이라고 보거나, 강성 지지층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지도부의 선택이다. 미국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가 쓴 ‘절반의 인민주권’이라는 책을 보면 민주주의는 정당 안에 있지 않고 정당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당내 민주주의만 추구하다가 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하는 건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리더십은 존재해야 한다. 과거엔 ‘정치 군대’라는 표현을 썼다.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싸울 때 정당은 일종의 정치 군대인데 그 안에서 민주주의만 외치고 있으면 되겠나. 민주주의는 정당끼리 싸워서 쟁취하는 거다. 거기까지 갈 건 아니지만, 정당이 목표를 가진 결사체라면 무제한의 민주주의를 허용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당내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냐에 대해선 고민의 여지가 있다. 결국은 당을 이끄는 지도자가 선택을 해야 하고 책임도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원은 지도자를 잘 뽑아야지. 잘못 뽑으면 선거에 진다.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_책임 있는 거대 여당으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내가 답하기는 어렵지만, 선거 후 문재인 대통령이 방향은 잘 제시했다고 본다. 뉴딜, 전 국민 고용보험과 같은 어젠다를 잘 던졌다. 일각에선 기본소득 얘기도 한다. 이제 국민과 소통하면서 구체적 안을 만드는 건 정당이 주도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그걸 못 따라가고 있는 게 아쉽다. 총선 끝나고 지금까지 두 달 가까이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거대 여당이라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라는 어젠다 세팅에 집중해야 할 때 아닌가. 힘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디다 쓰느냐가 중요하다.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 구성원들이 할 일이 뭔지 살펴보고 힘을 합치지 않겠나.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얘기 안 하고 그냥 모여 있으라고만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민주당은 21대 국회의 3대 개혁과제로 국회ᆞ권력기관ᆞ언론 개혁을 잡았다는데,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방향을 잘 설정하는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 177석이든 190석이든 힘을 쓰는 게 정당하면 국민은 쓰라고 할 것이다. 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관철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_사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 계층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복지제도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높아져 논의하기가 아주 좋은 시기다.
“진보 진영에서 제시했던 주요 개혁들을 성취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골든타임이 온 것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다른 문제로 에너지가 흩어지는 게 아쉽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군내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큰 쟁점이 됐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이슈에 달라붙었다가 입을 닫았다. 당선되면 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이 있는데 이 문제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간도, 자원도 한정돼 있다. 하려는 게 뭔지를 정해 에너지를 쏟아 붓고, 거기에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_검찰개혁,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지지층의 열망이 높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걸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그리고 검찰개혁은 이미 진행 중인 것 아닌가. 뉴딜의 핵심은 급진적 개혁을 했다는 게 아니라, 그 개혁의 지지 세력을 정치적으로 동원했다는 점이다. 개혁의 지지 세력이 정치적으로 계속 지지를 표명해야 개혁에 힘이 실린다. 다시 말해 뉴딜연합이 뉴딜 개혁의 핵심이다. 뉴딜의 기본정신을 3R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을 구제(Relief)하고, 경기를 회복(Recovery)시키고, 필요한 개혁(Reform)을 하자는 얘기다. 또 하나 핵심적인 R이 있는데 재정렬(Realignment)이다. 유권자와 지지 정당 관계를 재배열해 진보가 다수파가 되는 게 재정렬인데 이게 없으면 일시적 승리로 그친다. 정당이 개혁을 밀고 나아가는데 뒤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튼튼한 지지가 받쳐 주려면 결국 약자들의 삶의 문제에 답을 줘야 한다. 그게 주(主)가 되어야 한다. 국회에 있어 보니 검찰개혁을 절실하게 느낀다. 언론개혁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다. 하지만 그게 지금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코로나19로 타격이 심한 사람들의 삶을 해결해 주나. 이 문제에 어떻게 지속 가능한 해법을 제시할지, 그들이 개혁 추진 세력을 지속적으로 지지해 줄지 이 고민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뉴딜은 대공황 이후에 집권세력이 그런 명분으로 밀어붙인 개혁이다. 우리는 외환위기(IMF) 때 진보 세력이 집권했는데 방향을 잘못 잡았다. 탄핵 이후 다시 집권했는데 전략적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 요구가 워낙 강했고 또 해야 했지만 적폐청산의 물꼬를 사람 때려잡는 쪽으로 갈 거냐, 아니면 에너지를 고양시켜 제도 개혁으로 몰고 갈 거냐 고민했어야 했다. 촛불의 에너지에 비춰 개혁 성과가 부족하다. 이제 이만한 의석을 갖게 됐고 코로나19라는 환경이 있으니 진보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한국 현대사에서 흔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나누는데, 지금부터는 민주화 세력이 제2의 산업화까지 이루는 정당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게 장기 집권의 길이다.”
_총선 결과를 놓고 이미 재정렬이 진행돼 진보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류가 된 건 아니라고 본다. 정치적으로는 다수가 됐는데 사회적 다수파가 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 명분을 갖추고 성과로 실력을 인정받으면 될 것이다. 시간만 낭비하다가 나중에 ‘야당 때문에 못했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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