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군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이른바 ‘민식이법’이 올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민식이법엔 어린이 안전을 위한 시설과 장비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가해자가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낼 경우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속의여론’ 팀은 지난달 22~25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민식이법’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운전자와 어린이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해봤다.
저조한 안전시설 설치 실태
‘민식이법’ 시행 두 달째를 맞은 시점에서 진행된 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 내용을 담고 있는 ‘민식이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민식이법’ 시행으로 ‘시행 전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가 줄어들 것’(74%)‘운전자의 운전 습관이 개선될 것’(70%) ‘교통 안전에 대한 부모의 의식 수준이 개선될 것’(63%)이라는 기대감도 표시했다. 반면 교통안전시설 및 장비 설치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응답자의 53%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기대보다 이행 수준은 저조한 편으로 나타났다. (그림 1, 2)
‘민식이법’ 적용 과정에서 운전자의 고의성과 사고의 경중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논란이 없잖다. 처벌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민식이법’에 대한 운전자와 비운전자의 인식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의 차랑 제한 속도를 현재 시속 30㎞보다 더 낮춰야 한다는 응답이 운전자 대비 14%포인트 높았다. 또 어린이보호구역 내 제한 속도 위반 시 가중 처벌 찬성 응답도 운전자 대비 15%포인트 컸다. 반면 운전자 중에선 ‘민식이법’이 운전자에게만 불리한 법이라는 응답이 비운전자 대비 12%포인트 높았다. ‘민식이법’에 의한 처벌 수준이 너무 과하다는 응답도 비운전자 대비 15%포인트 많았다. ‘막을 수 없는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운전자에게 떠넘기는 법이다’(비운전자 대비 12%포인트) ‘법 개정 시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비운전자 대비 13%포인트)는 응답도 비운전자에 비해 크게 나타났다. (표 1)
무조건적인 처벌은 지양해야
‘민식이법’ 개정안의 내용 중 ‘안전에 유의하며 운전해야 할 의무’에 대해선 응답자의 79%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포함하는지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거의 대다수가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는 단속카메라가 없더라도 시속 30㎞ 이내로 서행해야 한다(94%)고 답했다. 신호등이 없더라도 무조건 일단 정지해야 하고(81%), 어디서든 어린이가 뛰어나올 수 있으므로 주의하며 운전해야 한다(96%)는 답변도 높았다. 안전운전 의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났다면 안전운전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응답은 35%에 불과했다. 이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65%)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 내 가중처벌 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엔 찬성 51%, 반대 49%로 팽팽하게 대립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게 무조건적 책임을 묻는 현행 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표 2)
법 시행 후 운전자 습관에 변화
응답자의 70%는 ‘민식이법’ 시행 후 운전자들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행동이나 습관에 변화가 있다고 답했다. 운전자들 중 ‘민식이법’ 시행 후 어린이보호구역을 일부러 피해 간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1%였다. 특히 20대, 무자녀, 운전 빈도가 높고 운전 경력이 짧을수록 어린이보호구역을 피해 간 경험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림 3, 4)
어린이보호구역 운영 시간 변경 필요 63%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의 2018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률은 토요일이 18.0%로 가장 높고, 금요일(14.9%)과 일요일(14.6%)이 그 뒤를 이었다. 시간대별로는 16~18시가 23.0%로 가장 높고, 14~16시가 17.8%, 18~20시가 17.4%를 기록했다. 하교시간 전후가 위험한 셈이다. 현재 365일 24시간 적용중인 어린이보호구역 운영 시간을 도보 이용객이 적은 새벽 시간과 학교 내 활동 시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조사에선 응답자의 37%가 현재와 동일하게 매일, 24시간 어린이보호구역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평일, 등하교 시간(31%)’‘매일, 등하교 시간(20%)’‘평일, 24시간(12%)’ 등 현재의 적용시간 외 다양한 의견도 개진됐다. (그림 5)
처벌보다 사고 방지 예방 중요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처벌 강화(23%)보다는 사전에 사고를 줄일 수 있도록 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77%)는 응답이 높았다. 사고 예방에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지 장치 선택 결과는 흥미롭다. ‘차도와 인도를 분리하는 펜스(가드레일) 설치’(53%)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48%) ‘어린이 교통 교육 의무화’(45%) 등이 높은 응답을 받았다. 반면 ‘횡단보도 근처 입간판’(8%) ‘속도를 저하시키는 좁은 도로’(11%) ‘운전자에게 착시를 주는 횡단보도 디자인’(13%) 등은 낮은 응답을 기록했다.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장치보다는, 보행자의 행동을 제한하고 돌발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가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민식이법’이 시행 되기 전에도 어린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한음이법’‘하준이법’‘태호유찬이법’ 등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 법안에 대해 알고 있는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이러한 법안의 시행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 역시 51%에 그쳤다. 연일 뉴스 보도를 통해 언급되는 ‘민식이법’이 한때의 소모적 이슈로 지나가지 않길 바란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나가 어린이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길 바란다. (그림 6, 표3)
김지혜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대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