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세계의 빈곤] 이주 여성들 이혼 느는데… 일자리 못 구한 채 ‘가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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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계의 빈곤] 이주 여성들 이혼 느는데… 일자리 못 구한 채 ‘가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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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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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 팍팍한 다문화 가정 

2008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면서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레아씨가 10일 경기 부천시 춘의동 자택에서 휴대폰에 담긴 가족사진을 보고 있다.레아씨는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결혼 1년 만에 이혼한 뒤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 춘의동의 한 다가구주택. 필리핀에서 결혼 이주해온 레아(39)씨는 6.6㎡ 남짓한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옷 수납 공간이 부족했던지, 예고된 손님의 방문에도 옷가지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한국에 지난 2008년 발을 디딘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필리핀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한국으로 결혼이민 온 직후에는 행복했다. 강원 영원의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레아씨는 “처음 한 달 정도는 남편이 잘 해줘 정말 행복했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김치를 못 먹는다고 맞았고, 한국말을 못한다고 또 맞았다”고 말했다. 고국의 가족이 보고 싶어 통화를 할 땐 주먹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혼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 1년만이었다.

낯선 한국 땅에서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그에게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굶는 날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쉽지 않았다. 부천 친구 집에 얹혀 버티다 주변 도움으로 4년 전 지금의 자동차부품회사에 취업했다. 그렇지만 빈곤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설상가상, 결혼생활 당시 폭행 후유증과 스트레스, 한국에서의 고된 생활로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1주일에 세 차례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 그는 “월급 110만원 중 30만원의 신장투석에 쓰고 있다”며 “30만~40만원은 필리핀으로 보내고 집세(월 25만원)와 전기료 등을 내고 나면 달랑 10만원이 남는다”고 했다. 더 일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지만 이젠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코리아드림으로 한국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10여년, 가난과 빈곤의 그림자는 짙어지기만 했다. 레아씨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했지만, 이 굴레서 벗어날 수가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국적별 결혼 이민자 추이.

10일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레아씨와 같은 결혼이민자는 지난 4월말 현재 16만7,860명에 이른다. 작년 말(16만6,025명) 이후 넉 달 만에 1,835명 늘어난 것으로, 이는 2016년 한해 동안 늘어난 수(766)의 배가 넘는다. 인생을 걸고 한국으로 오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곤궁하기 그지없다. 언어, 문화차이 등 다양한 이유로 이혼하고 있으며 이혼은 곧 가난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기준 이혼율은 16.6%에 이른다.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살고 있는 이들이 30.3%, 전세 17.6% 등 절반 정도가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이민자들 지원하고 있는 경기글로벌센터의 송인선 대표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프거나 장애 판정을 받더라도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민자들이 많다”며 “기본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우선 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선 의료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사는 또 다른 중국 결혼이민자 A(52)씨는 한국인 남편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초등학생 딸을 성추행 해 2년의 소송 끝에 최근 이혼했다. ‘한국인 남편’이 없는 그가 일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딸(유학생 비자) 또한 온전한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겨우 유지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2만원짜리 방이지만, 넉 달 째 월세를 못 내고 있다. A씨는 “다행히 시민단체 도움으로 딸 비자가 최근 취업할 수 있는 동포비자(F-4)로 전환됐다”며 “그 비자가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빛”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 이주여성인 그의 딸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결혼 이민자 추이.

다문화 가정의 빈곤은 그 조상이 과거 독립투사였다고 해도 비켜가지 않는다. 경기 안산에 사는 기소피아(여ㆍ33)씨는 2012년 한국에 들어와 외국인 신분으로 살다 2018년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개항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 왕산 허위(1855~1908)의 후손으로 확인되면서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외국인 신분으로 남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새벽마다 직업소개소를 전전하고 있다. 비자 때문에 3년마다 한번씩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와야 하는 것도 그 남편의 일이다. 기소피아씨는 “남편이 용접일도 배웠고, 샌드위치 판넬 작업도 했지만 시원치 않아 최근엔 택배회사에 취직했는데 아침 9시에 나간 양반이 새벽 2시가 넘어야 들어온다”며 한숨 지었다. 그는 쌍둥이 두 아들(10)을 보느라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현재 국내 결혼이민자는 중국국적이 6만505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4만4,951명, 일본 1만4,252명, 필리핀 1만2,099명 등의 순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4만9,008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 2만8,272명, 인천 11만176명 등이다.

고려인 정착을 돕고 있는 KCS 예비적사회적기업 주식회사의 김종천 대표는 “고려인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한 만큼 이들의 후손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한다”며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이들의 비자를 방문취업(H-2)에서 재외동포(F-4)로만 바꿔줘도 빈곤의 대물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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