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재수생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대학과 협의하겠다.”
지난달 18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재수생과의 대입경쟁을 걱정하는 전남 담양고 학부모들을 마주한 채 내놓은 이 발언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큰 파문을 일으켰다. 행간에 숨은 ‘고3들이 공평한 대입을 치르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정부 메시지는 대학들로 하여금 설익은 입시제도 개편안을 단시간에 내놓도록 유도했다.
급기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9일 공개적으로 “조만간 각 대학이 (고3의 공평한 대입을 위한)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호언하기에 이르렀고, 차관의 발언 수시간 만에 연세대는 학종에서 비교과 활동 반영을 최소화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서울대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신입생 선발에 관해 강제할 권한이 없는 유 장관이 같은 날 ‘7월 중’으로 대학별 입시 변경안 발표 시한을 못박은 사실도 대학들의 빠른 대답을 끌어내는데 한몫했다. ‘공평한 입시’를 유지하라는 정부의 다급한 요청이 당초 입시제도 개편에 난색을 표했던 대학들을 바꿔 놓은 것이다.
분란함이 무색하게, 전문가들은 대학들의 수시 변경안이 대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수시모집은 애초 재학생 선발 창구로 작용했기 때문에 재수생과의 공평한 경쟁과 크게 상관이 없어서다. 수시모집 두 달 전 ‘게임의 룰’을 바꾸라는 정부 요청에 전국입학관련처장협의회는 오히려 “수험생 혼란을 초래하고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작 재수생에 비해 재학생이 불리한 정시, 그 당락을 좌우할 수능에 대해 교육부는 “난이도 조정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교육부와 대학들의 공평한 대입을 위한 대책들은 핵심을 벗어난 듯하다.
또 다른 혼란을 일으킬지 모를 수시 변경안을 대학들에 요구하는 대신 교육부는 차라리 이 같은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 듯 하다. 전국 고3 학생수는 2019년 49만명, 올해 44만명으로 매년 큰 폭으로 줄지만 주요대 입학정원은 변함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현 고3들은 유례없이 경쟁률 낮은 입시를 눈앞에 뒀다는 것이다. 더 큰 공정성 논란을 일으킬지 모를 섣부른 입시 대책 변경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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