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사내하청 판결후 ‘노동 사법화’ 가속
갈등 줄여야 할 고용부, 쟁점마다 판단 회피
비정규ㆍ특수고용 문제에 적극 목소리 내야
노동의 유연화가 핵심인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본격화한 1998년 이후 한국의 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판결을 고르라면 전문가 열 명 중 아홉 명은 아마도 2010년 7월 22일의 대법원 판결을 꼽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하청업체에서 3년간 일하다 노조활동 등을 이유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를 현대차가 직접고용 하라고 한 판결이다.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각각 오른쪽 바퀴와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일을 해도 정규직의 절반 남짓한 임금을 받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는 이후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송을 이어가며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판결이 정초(定礎)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 복잡하지만 ‘최병승 판결’의 내용을 부연하면 대법원은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태를 관리하고 작업을 지시하는 등 노무 지휘를 했으므로 근로자 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은 하청업체 대표가 아닌 현대차 대표라는 얘기였다. 판결 이후 정부에 현대차와 사내하청 간 근로관계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시민ㆍ사회단체의 요구가 빗발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끝내 이를 외면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답게 고용부는 현대차와 하청노동자 간 근로관계의 불법성 판단을 차일피일 미뤘고, 법원이 불법으로 판단한 사안에도 제대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노동문제를 신속히 판단하고 규율해서 갈등을 최소화해야 할 노동부처가 이처럼 임무를 방기하면 ‘노동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노사 모두에게 손해다. 소송을 제기하는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몇 년간 진이 빠지고 회사는 회사대로 경제적 타격과 위신 추락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은 보수정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원에 의지하는 힘겨운 해법으로 우회한 건 현안을 판단하지도 결정하지도 않은 고용부 탓이 크다.
문제는 ‘노동 존중 사회’를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부처도 핵심 노동 문제를 판단하지 않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줄이는 일, 외양은 사장님 같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에 종속된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일은 노동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고용부도 천하태평이다. 비정규직을 쓸 수 있는 사유를 최소화하자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은 보수정권과 차별적인 문 대통령의 대표적인 비정규직 공약이다. 하지만 고용부는 2018년 초 전문가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더니 결론이 나지 않자 지난해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이 문제를 던져 놓고는 반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노사 이견이 큰 사안이라고는 하지만 고용부가 의지만 보였다면 이미 결론이 났을 문제다.
사용자들에게 종속되지만 ‘무늬만 사장님’인 프리랜서 등의 근로자성을 판단하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과제는 아예 법원으로 떠넘긴 모양새다. 렌터카 호출서비스인 타다 문제가 좋은 예다. 타다는 최근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고용부는 이미 지난해 5월 타다(의 용역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던 기사들의 근로자성 판단을 시작했다. 타다가 직접 기사들을 지휘하고 징계권을 행사했다는 점 등을 들어 근로자 성격이 강하다는게 다수 노동법 학자의 견해지만 고용부는 1년이 훨씬 넘도록 이 사안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 고용부가 남의 일 보듯 하는 사이 지난달 28일 노동위원회는 “타다의 프리랜서 기사는 근로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 발전과 산업 형태의 변화로 고용관계는 빛의 속도처럼 변하는데 이를 규율하고 질서를 잡아야 할 주무 부처는 법원보다도 행동이 굼뜨다. 숨어 있는 ‘진짜 사장’ 찾기에 앞서 안 보이는 노동부처부터 찾아야 할 모양이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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