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이재용 영장 기각 통해 본 ‘서초동 단골손님’의 역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서초동은 잔혹한 걸까요, 관대한 걸까요.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으로 또다시 구속 갈림길에 놓였는데, 9일 새벽 구속 영장이 기각돼 간신히 구속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며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고 판단해 사법적 부담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 위기에 놓였던 건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이 부회장은 앞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년 1월과 2월 두 번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구속됐습니다. 그 해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아 수감 생활을 이어가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구속 353일 만에 석방됐어요. 모두가 이대로 집행 유예가 확정되는 줄 알았겠죠. 예상 외로 대법원에서 사건을 파기환송 해 안심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 번이나 구속된 총수도?
서초동이 유독 삼성에만 냉혹한 걸까요? 그렇진 않아요.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있죠? 웬만한 대기업 오너들은 한 번쯤 서초동에 다녀갔어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 시작이었다고 해요. 김 회장은 1993년 불법 외화 유출에 따른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재벌 총수 최초로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되는 불명예를 썼어요.
그게 다였냐고요? 아닙니다. 김 회장은 유독 검찰, 법원과 악연이 많습니다. 1993년에 이어 2007년과 2012년에도 구속된 전력이 있어요. 2007년 3월에는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에 대한 ‘보복폭행’을 벌인 혐의로 구속 영장이 발부돼 검찰 단계에서 구속됐어요.
1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아 수감 생활을 이어가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죠. 2011년에는 차명회사 불법지원과 배임 등의 혐의를 받았는데요. 구속 기소는 면했지만, 이듬해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어요. 물론, 이때는 서초동(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이었지만요.
‘광복절 특사’는 누구였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두 번이나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받았었어요. 첫 번째는 2003년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최 회장은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는데요. 1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이 나왔지만,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이후 감형돼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이마저도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에 사면됐어요.
최 회장과 서초동의 악연은 정확하게 10년만에 재현됐습니다. 2013년 1월 계열사의 펀드 출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된 겁니다. 10년 전과 달리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은 피했지만, 법정 구속까지 피할 순 없었어요. 항소심에 이은 상고심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돼,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2년6개월 동안 복역해야 했죠.
수감과 집행정지 반복, 반복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2013년 7월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구속 수감된 적이 있어요. 증거 인멸과 도망 염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거에요. 이 회장의 수감 생활은 참 파란만장했어요. 건강 문제가 생겼거든요. 만성 신부전증을 앓던 이 회장은 1심 재판 중이던 2013년 8월 신장이식수술을 위해 3개월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어요. 그러나 조직 거부 반응 등으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두 차례 기한을 연장 받았어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수감생활은 피할 수 있었죠.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2014년 4월 재수감 됐는데요. 그러다 다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해 병원 치료를 받게 됐어요. 수감과 집행정지를 반복한 겁니다.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구속집행정지 상태인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재판. 2015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하면서 다시 서울고법으로 사건이 되돌아갔는데요. 파기환송심에서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나왔고, 이 회장 측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이대로 확정됐어요. 참 긴 싸움이었습니다.
롯데는 어쩌다 온 가족이 법정에?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전 명예회장,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총수일가가 나란히 한 법정에 서는 일도 있었어요. 일감 몰아주기, 공짜 급여 지급 등 경영비리 의혹이 제기됐거든요.
그 중 유일하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회장은 2016년 9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신 회장은 심사를 마치고 무려 18시간만에 법원을 나서며 “우리 그룹은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책임지고 고치겠다. 더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죠.
법원이 그의 바람에 응답한 걸까요. 법리 상 다툼의 여지로 구속은 피했습니다. 그러나 국정농단 관련 뇌물 공여 혐의로 2018년 2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아 결국 법정 구속됐어요.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었겠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습니다. 2심은 뇌물공여 혐의와 경영비리 혐의 재판을 병합해 진행했는데요. 그 해 10월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하면서 경영 공백을 피할 수 있게 됐어요.
이들 뿐이 아니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이 됐고요. 담철곤 오리온 회장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또 구속만 면했을 뿐 검찰 수사와 재판 등을 받았던 대기업 오너도 참 많습니다. 서초동의 ‘단골 손님’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경제도 많이 어려운데 서초동에서 이들을 보지 않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요.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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