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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도사리를 아십니까?

입력
2020.06.10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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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무에서 자라던 열매가 바람이나 병에 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지는 일이 있다. 이것을 도사리라 하는데, 곡식이나 과일, 나물 등을 거두다가 빠뜨리거나 흘린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연히 책 제목에서 ‘도사리’를 만났을 때, 낟알이나 이삭, 혹은 낙과(落果)라는 말이 있는데도 굳이 낯선 말을 붙인 것은 지식을 뽐내는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글쓴이는 떨어진 열매를 다시 줍는 마음으로 이 말을 쓰며, ‘도사리를 본 누군가가 이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책의 서문에 밝혀 두었다. 떨어져 뒹구는 과일은 되살리지 못해도, 사라져 가는 말은 다시 불러 주면 보석 같은 말로 되살아난다. 한때 같은 취미를 즐기는 모임을 ‘서클’이라 했지만, 이제는 되살아난 말 ‘동아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미 죽은 말이 되었다던 ‘온(백), 즈믄(천)’도, ‘온갖, 온누리, 즈믄둥이’에 쓰이는 것을 보면, 말이란 사람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단어 하나를 사전에서 지우게 되면 며칠 밤을 설칩니다. 그 말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전에 새말을 싣거나, 오래된 말을 사어로 판정하는 연구사가 한 말이다. 말에다가 사형 선고를 내리면 수백 살 된 말이 사라지는 책임을 떠안는 기분이란다. 우유, 치약, 자동차 할 것 없이, 광고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린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20년 전, 한 작가가 ‘이름 모를 그대들’도 같이 불러 달라고 부탁하던 그 말을 오늘 이 땅에 사는 이들과 나눈다. 나도 모르게 흘린 낟알 하나, 과일 하나를 돌아보는 심정으로 땅바닥에 흘린 우리말을 주워 담아 보자.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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