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기각 불구 “사실관계 소명됐고 상당한 증거확보”
법원이 불구속 강조한 만큼 영장 재청구 가능성 낮아
삼성그룹 부당 승계 의혹으로 구속 갈림길에 섰던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위기를 면했다. 장기간 검찰 수사도 사실상 일단락되면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둘러싼 공방전은 법정으로 넘어가게 됐다.
원정숙(46ㆍ사법연수원 30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자본시장법 및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과 같은 혐의를 받는 최지성(69)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64) 전 미래전략실 팀장(사장)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2017년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3년 4개월만에 돌아온 재구속 위기를 넘겨, 향후 이어질 수사와 재판에서의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며 방어권을 확보하게 됐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사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원 부장판사가 밝힌 기각 사유를 해석하면 “검찰이 수사한 내용은 인정되지만, 현재 상태에서 구속을 하면서까지 수사할 필요성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소명은 인정함에 따라 검찰과 삼성의 공방전은 법정으로 이어지게 됐다.
특히 법원이 기각 사유를 통해 ‘불구속 재판’의 필요성을 밝힌 만큼,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은 낮아지게 됐다. 통상 중요 사건에서 핵심 피의자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 검찰은 △영장 재청구와 △재청구 없는 불구속 기소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이미 수사 기간이 길어 추가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재청구를 위한 여론의 힘을 받기도 쉽지는 않다. 지난번 박영수 특검은 국정농단 사태 직후의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지만, 이번에는 검찰을 둘러싼 외부환경이 그때만큼 우호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직후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추어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며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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