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 열고
비료 공급 등 민생 챙기기에 집중
김여정은 나흘째 대남 압박 앞장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지휘 아래 연일 규탄대회 등으로 대남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도 별다른 대남 메시지 없이 민생 챙기기에만 열중했다. 김정은ㆍ김여정 남매의 역할 분담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걸까.
김 위원장은 7일 노동당 정치국 7기 13차 회의를 열어 화학공업부문과 평양 시민 생활 보장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지난달 24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주재 후 보름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서 대남 문제 관련 언급 없이 민생 현안에 몰두했다. 특히 △농번기 비료난 해결 △살림집 건설 등 평양 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도 강조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심각해진 경제난 때문에 내부 불만이 커지자 식량 증산과 직결된 비료 공급 해결 의지를 보이고, 평양의 권력 핵심층부터 달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반면 김 제1부부장은 ‘강력한 대남 압박’에 나흘째 앞장 선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 6일부터 3일 연속 탈북자 단체 대북전단 살포 관련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를 낭독하고 궐기대회를 여는 등 비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내치, 김 제1부부장은 외치에 힘을 쏟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의도된 연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오늘 논의한 민생 문제들은 굳이 정치국 회의를 열지 않고 내각 차원에서 지시만 해도 충분한 사안”이라며 “김 위원장은 각종 현안 책임에서 벗어난 ‘애민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퍼포먼스”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와 대북제재로 어려워진 경제는 김재룡 내각 총리에게 일임하고, 잘 풀리지 않는 북미ㆍ남북관계 등 대외정책은 김 제1부부장에게 맡겨 ‘최고존엄’으로서 책임을 피하는 모양새라는 얘기다.
북한이 그동안 우회 거론하던 탈북자 문제를 선전에 적극 동원하는 것 역시 내부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북측은 탈북자를 주로 행불자나 월남도망자 등 우회적으로 표현, 비난해왔으나 4일 김 제1부부장 담화 이후 공식화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당국이 쉬쉬하던 탈북자 문제를 선제적으로 알려 주민 선전에 활용할 만큼 북한 내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의 대남 압박이 속도전으로 이어질 경우다. 김 제1부부장은 앞서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ㆍ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했다. 실제로 북측은 이날 오전 연락사무소 남측 통화에 응답하지 않아 한때 연락사무소부터 폐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일단 북측은 오후 통화에는 정상적으로 응답했지만 대남전략 특성상 예고한 사안을 차례로 실행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ㆍ남북관계 모두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꼬여 있는 남북관계 실타래만 풀기도 쉽지 않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현재는 남측이 적극적으로 나서도 북측이 뺨을 때리는 상황”이라며 “(협상 측면에서 볼 때) 정부도 원론적인 입장으로 되돌아가 절제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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