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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줄만 없애 줍써”…제주4ㆍ3 행불 수형인 재심 소송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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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줄만 없애 줍써”…제주4ㆍ3 행불 수형인 재심 소송 시작

입력
2020.06.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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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8일 오전 제주법원 후문 앞에서 제주4ㆍ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행불인 수형자 재심청구에 따른 첫 심리 기일이 열리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8일 오전 제주법원 후문 앞에서 제주4ㆍ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행불인 수형자 재심청구에 따른 첫 심리 기일이 열리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영헌 기자.

“빨간 줄 그어진 것만 없애 줍써(주세요).”

8일 오전 제주4ㆍ3사건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행방불명된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에 따른 심문 기일이 시작되기 앞서 제주법원 후문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임춘화(74) 할머니는 울먹이면서 호소했다.

임 할머니는 “제가 3살 때 산사람들하고 토벌대를 피해 동네 굴 속에 숨어 있었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경찰에 함께 끌려간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며 “제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 장찬수)는 이날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행불 수형인 13명의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 기일을 진행했다. 심문은 재판부가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자에게 서면 또는 구술로 진술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심문 절차 후 재판부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지난해 1월 생존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판결을 내린 가운데 생존 수형인이 아닌 행불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행불 수형인 유족 339명은 4ㆍ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지난 2월 18일 재심을 청구했다. 또 지난해 6월에도 행불 수형인 유족 10명이 재심을 청구해 전체 재심 청구 행불 수형인은 349명이다. 재판부는 전체 피고인 수가 많은 만큼 10~20여명씩 나눠 순차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은 행불인 수형자 14명에 대한 심문이 이뤄졌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의 생존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생존 수형인과 달리 행불 수형인는 피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심 청구인이 유족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생존하더라도 대부분 나이가 100세 내외로, 생존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절차상 생존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입증할 의견서를 변호인 측에 주문했다. 또 수형인 명부와 호적상 이름이 불일치하는 경우와 70여년 전 명확하지 않은 공소사실을 반박할 당시 구술증거에 대한 증명력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이날 “제주4ㆍ3은 매우 불행한 사건으로, 재판부도 많이 고민을 하겠다”며 “(검찰과 변호인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정부가 발표한 제주4ㆍ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ㆍ3 당시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군법회의 명령’ 자료에는 2,530명의 피고인 명단이 남아 있다. 군법회의 대상자들은 서울, 인천, 대전, 대구, 전주, 목포 등 전국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상당수는 집단학살 당했으며, 일부는 행방불명 됐다. 행불 수형인은 대부분 1947∼49년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고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우 4ㆍ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74)은 “7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유족들이 원통함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들어 병들고 쇠약해져 있다”며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청구인들이 살아 있을 때 결론을 볼 수 있도록 재판부의 빠른 진행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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