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어린이가 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감금됐다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보다 한 달 전 병원을 찾은 아이를 치료한 의료진이 아이 머리의 찢어진 상처와 손 엉덩이에 든 멍을 보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가 의심된다고 기민하게 신고했지만 이후 아이를 조사한 아동보호전문기관, 부모를 조사한 경찰 모두 학대가 계속될 거라 예상하지 못한게 비극으로 귀결됐다. “머리는 내 실수로 다친 것이고, 몸의 멍은 내 잘못으로 맞아 생겼다”는 아이 말을 순진하게 믿은 결과다.
□ 1월 경기 여주에서 30대 계모가 9세 장애 아들을 찬물이 담긴 욕조에 방치해 목숨을 잃게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란이 됐던 아동복지법(제4조)의 ‘원(原)가정 보호 원칙’의 문제점이 이 사건으로 재환기되고 있다. 여주 사건의 피해 아동은 이미 두 차례 학대 신고를 받고 격리됐지만 “잘 키워 보겠다”는 친부의 요청으로 부모 손에 돌려보내졌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 503건이던 재학대 건수는 2018년 2,543건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학대 정황이 드러나면 아동을 원가정에서 신속히 격리시키고, 격리 아동을 원가정에 돌려보낼 때는 신중을 기하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정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올해 10월부터 학대 아동의 원가정 복귀 여부를 판정할 때 전문가로 구성된 사례결정위원회를 거치도록 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정 복귀 의견서 작성 절차를 까다롭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도적ㆍ물적ㆍ인적 인프라가 부실한 점이 걸림돌이다. 최일선에서 학대 아동의 격리를 결정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68개에 불과하고, 피해 아동들이 장기간 머무르는 위탁 가정, 그룹홈, 보호시설 등의 관리 소홀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부모의 친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법은 바꾸면 되지만, 피해 아동들이 가해자 부모를 피해 당장 갈 데가 없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 유엔아동권리협약(7조)은 모든 아동은 부모에게 양육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게 최선이지만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돌볼 능력이 없을 때 아이에게 집은 보금자리가 아닌 지옥이 된다. ‘원가정 보호원칙’ 의 맹점을 비판하되 학대 피해 아이들이 머물 곳을 마련해 주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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