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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보건연구원 복지부 이관 제동… 질본에 힘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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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보건연구원 복지부 이관 제동… 질본에 힘 실어줬다

입력
2020.06.05 18:23
수정
2020.06.06 00: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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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병연구센터 등 이관 “전면 재검토” 지시…“복지부 이기주의” 비판여론 수용한 듯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이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및 확진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이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및 확진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질병관리본부(질본)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추진하면서 질본 아래에 있던 국립보건연구원 등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키로 한 내각의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신종 감염병 대응력을 높인다면서 오히려 ‘질본의 손발을 자르는 결정을 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물론, 규모를 보전하려는 조직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수용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현재 질본 소속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가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를 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는 방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선 3일 질본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내놨다. 여기에는 국립보건연구원의 복지부 이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감염병 전문가들은 즉각 “이런 조직 개편은 하나마나 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감염병과 만성질환 등과 관련한 기초ㆍ실험연구를 담당하는 이들 기관이 복지부 산하로 이관되면 본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관 결정은 전형적 부처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관을 함으로써 이들 기관에 복지부가 입맛대로 고시 출신 공무원을 배치해 좌지우지 하려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들끓었다.

복지부는 감염병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연구 강화를 위한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만큼 국립보건연구원의 복지부 이관은 사실상 백지화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감염병 관련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당초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 산하에 두어야 한다고 밝히며 제시했던 근거들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여론이 있다. 복지부는 지난 4일 기자설명회에서 국립보건연구원이 이제까지는 방역을 지원하는 기술지원 업무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ㆍ백신을 개발하는 한편, 나아가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역조직인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두기에는 그릇이 크다는 설명이다.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낸 전문가 중에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호흡기내과 교수도 있다. 정 교수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 아래 두는 것을 두고 “어이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와 국립보건연구원은 1980년대 국립보건원에 모태를 둔 기관으로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사이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국립보건연구원은 만성질환 연구(생명의학센터) 국가병원체 은행 설립(유전체 센터) 감염병 센터를 아래 두고 질본에 맞는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역할이고 그 이외 기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정 교수는 “복지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5,000억원 수준인데 4,000억원은 보건산업진흥원으로 간다”면서 “그렇게 국가 연구개발 기능이 절실했으면 왜 이제까지는 보건산업진흥원에 맡겨서 외부 연구기관에 외주를 줘 왔나”라고 되물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국립보건연구원 조직체계를 흔들다가 그간 쌓은 노하우가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 질본 내부에 국립보건연구원을 대체할 연구조직을 새롭게 만든다지만 전문가는 어디에서 데려올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단적으로 국립보건연구원에는 모기를 채집하며 살아온 전문가들이 있다”면서 “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에서 그런 전문가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또 질본의 새 연구소에서는 그런 전문가를 어디서 데려올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국립보건연구원을 품겠다며 내건 논리에 전혀 참고할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를 보전하려는 조직 이기주의도 분명히 숨어 있다는 의견이 학계에는 많다. 산하기관이 있어야 복지부 내부 인사적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질본의 센터장급 보직자 5명 가운데 3명이 복지부에서 대부분의 공무원 경력을 보낸 인사다. 경력에서 보건 관련 부서를 맡은 시기는 일부이다. 때문에 신종 코로나 첫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2월 중반까지 정은경 본부장 혼자 매일 기자설명회를 진행했던 이유가 기자설명회를 진행할 만한 인사가 질본 내에 없어서였다는 소리까지 의료계에서는 나왔다. 실제로 권준욱 전 복지부 대변인이 2월 21일 공석이던 국립보건연구원장으로 긴급히 배치된 이후에야 두 명이 번갈아 가며 기자설명회를 진행했다. 정 본부장과 권 원장 모두 예방의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복지부 제2차관을 신설하면서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 산하에 둘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2차관 몫으로 국립보건연구원과 함께 신설 추진 중인 건강정책실을 뒀다는 이야기다. 정부안대로 진행됐다면 질병관리본부를 떠나게 될 인력도 알려진 수준의 두 배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복지부 산하 이관이 논의되는 국립보건연구원과 장기혈액관리원의 정원은 161명이지만 무기계약 연구직 등 국립보건연구원 공무직 280명은 정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 이기주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분리안이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여론에서 지적할 만한 문제가 제기된 만큼 새로운 안을 찾아보는 것이 당연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은경 본부장도 기존 안에 동의했다”면서 “감염병연구센터를 복지부로 보내지 않는 방안 등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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