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3개월이면 충분했습니다. 온라인 시대 대학교육에 대해 오랫동안 토론이 무성했지만, 불과 3개월도 안되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대학이 온라인 교육기관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학생들과 (절대 전달해서는 안되는) 비말을 나누며 얼굴을 맞대던 시간은 어즈버 꿈과도 같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깨달음도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환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몇몇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비밀도 알려졌습니다. 대면강의만 가능할 것 같았던 공학이나 예술분야 수업들에서도 창의적인 대안들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평가의 공정성이나 토론을 통한 상호학습, 비교과 경험 같은 난제가 있지만, 코로나 이후에도 온라인 교육방식이 병행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교수의 출장이 휴강사유가 되던 시절도 땅 속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린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의 존재 방식과 존재 의의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대학교육이 온라인으로 어느 정도 대체될 수 있다면, 여러 대학의 수업을 섞어서 수강하는 것은 왜 금지되는지, 혹은 더 나아가 교육의 주체가 반드시 대학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묻게 될 것입니다. 제 직업 안정성을 극도로 위협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이,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은 교수들만 모르는 비밀입니다. 아직도 교수에게 이유없이 친절한 전통이 남아 있지만, 좀 가까운 분들은 우리나라 대학에 대한 걱정과 교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그리고 세게 토로하곤 합니다. 대학이 과연 우리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가 혹은 대학이 우리 사회가 필요한 지식을 제대로 생산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등장하면 괜히 물만 들이켜게 됩니다.
현재 대학의 체제는 학문, 교육, 그리고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거의 천년에 걸친 경험과 통찰의 산물입니다. 쉽게 변화시켜도 되는지 대학들이 망설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산업의 변화와 불확실성의 증대, 그리고 해외 대학과 대학 밖 실무교육과의 경쟁 앞에 놓여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추상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생의 수, 우수 교원의 확보, 재정과 같은 거의 모든 지표에서 위험 신호를 감지한 지 오래입니다. 생존의 위기가 코앞입니다.
위기 앞에서 대학들은 정부를 쳐다봅니다. 고마운 정부는 가련한 대학들을 구제하고자 재정지원 사업을 찔끔찔끔 꺼내고, 대학들은 죽기살기로 거기 매달립니다. 우리나라 중소 규모 대학들의 정부사업 제안서 작성 경쟁력은 하버드나 MIT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돈은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대학의 내부 혁신 동력은 되레 시들어 갑니다. 위기 앞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대학 역시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혁신경쟁을 시도해야 합니다. 사회의 수요를 반영하고, 대학의 본질을 지키면서 학생을 중심에 놓은 교육과 연구의 혁신을 앞다투어 시도하다 보면, 살아남은 몇몇 대학은 제대로 된 대학으로 재탄생할 것입니다. 라고 썼지만 불가능합니다. 대학에 땅 크기, 건물 규모, 대형 강의 수, 도서관의 장서 수, 교수의 수, 기숙사 규모, 출석부 작성 요령, 성적 비율까지 꼼꼼하게 정해 주는 교육부 덕분입니다. 부동산을 줄이고 학생 장학금을 늘리거나, 일부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하여 교수를 소수정예화하는 식의 혁신은 결코 용서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우리 대학들은 차별성없이 비슷비슷해졌고, 이제 텅 빈 큰 건물들을 끌어안고 나란히 죽어갑니다. 하지만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이런 죽음은 그다지 명예롭지 않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규제들을 잠시라도 좀 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대학들이 혁신의 전장에서 한번 제대로 싸워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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