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지킨 세월, 후회될 줄은…” 취업전선서 무너지는 제대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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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킨 세월, 후회될 줄은…” 취업전선서 무너지는 제대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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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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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군인 年 7000여명 군복 벗어, 60%가 군인연금 혜택 못 받아 

 5년간 전역자 중 취업 57%뿐… 대위 계급장 떼고 콜센터 취업도 

제대를 앞둔 직업 군인들의 최대 고민은 취업이다. 한창 일할 나이지만, 군 경력을 살린 양질의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사진은 지난해 3월 20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역예정장병 취업박람회에 참석한 장병들이 게시판에 걸린 채용공고를 살펴보는 모습. 배우한 기자

예비역 육군대위 윤영주(43ㆍ가명)씨는 여군사관을 거쳐 2000년대초 소위 계급장을 달던 순간의 떨림을 잊지 못한다. “여자가 웬 군인이냐”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윤씨는 2017년 7월까지 15년 1개월 간 용인 김포 양평 서울 철원 등지의 부대에서 중대장과 참모로 일했다. 복무기간 중 표창장 등 크고 작은 상을 29차례 수상할 만큼 군 생활도 모범적이었다고 자부했지만, 소령 진급에 실패해 원치 않게 군복을 벗어야 했다. 그는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육아휴직도 가지 않고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직할 정도로 업무를 챙겼지만,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것이 진급심사에 영향을 준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자 윤씨는 순식간에 군 간부에서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변했다. 자녀 셋을 둔 40대 여성을 받아주는 직장은 드물었다. 공공, 민간 가리지 않고 50곳 넘게 원서를 넣었지만 취업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상담 분야 석사학위가 있는 윤씨는 정부 부처 사무보조 업무에 지원했다가, 면접장에서 “군 경력과 학력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윤씨는 배우자 수입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취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소개로 2018년말 집 근처 콜센터에 상담원으로 취직했다. 정보기술(IT) 업체 콜센터에서 고객 문의전화를 받는 업무로, 하루 4시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자녀 돌봄을 병행했다. 하지만 군 경력을 전혀 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군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다 제대군인지원센터 알선으로 여군 출신을 찾는다는 한 제조업체의 사장 비서 자리에 올 1월 채용됐다. 조건이 괜찮아 입사를 위해 인공지능(AI) 면접까지 봤지만 한달 만에 사표를 썼다. 윤씨는 “회사에서 세금을 줄여야 한다며 회계와 관련해 불법적인 업무 지시를 했는데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며 “군 출신은 시키면 뭐든지 한다는 인식 때문에 일부러 군 출신을 뽑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주말마다 전시관에서 행사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번다. 그러면서 다음달로 예정된 정보 분야 군무원 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군 경력은 민간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걸 구직 과정에서 절실히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력을 인정해 주는 군무원이나 공공기관 일자리에 매달리게 되더라고요.”

‘군 생활이 후회되냐’고 묻자 윤씨는 “군에서 보낸 시간은 분명 행복했지만, 15년 간 청춘을 바쳐 일한 경력이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후회가 전혀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연금 못 받는 제대군인 중 절반만 취업 

매년 직업군인 7,000~8,000여명이 계급장을 내려 놓는다. 제대군인을 위한 군인연금 제도가 있지만 이들 10명 중 6명은 연금수령을 위한 최소 복무기간(19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해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제대한 5년 이상 복무자 8,500여명 중 군인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39.8%인 3,400여명에 그쳤다.

연금을 받지 못해 취업 전선(戰線)에 나서는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가보훈처가 복무기간 20년 미만 직업군인들의 취업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2014~2018년 전역한 2만1,107명 가운데 취업한 사람의 비율은 56.6%(2018년말 기준)였다. 특히 윤영주씨와 같은 여성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39.9%에 머물러, 남성(57.9%)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조사시점인 2018년 이들 제대군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국민 고용률은 70.2%(25~29세)~75.7%(30~39세)로 제대군인보다 14~19%포인트 높았다.

20년 미만 복무 제대군인 취업률. 그래픽=강준구 기자

제대군인 취업난의 근본원인은 선진국과 달리 이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30, 40대 나이에 신입사원 공채는 지원하기가 어렵고, 그나마 군 경력을 인정해 주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일자리는 경쟁이 극심하다. 박동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대군인은 나이나 학력 면에서 취업시장에서 일반 대졸 구직자의 경쟁 상대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준복 국가보훈처 수석컨설턴트도 “경비, 보안, 비상계획 분야처럼 제대군인에 적합한 일자리가 민간에 많지 않다”며 “군과 민간의 조직 특성이 전혀 달라 군의 주특기를 살리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창 일할 나이의 제대군인은 매년 쏟아진다. 다른 공무원과 달리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승진을 못하면 군을 떠나야 하는 계급정년 제도의 영향이 크다. 군인사법은 장교 계급에 따른 정년을 △대위 43세 △소령 45세 △중령 53세 △대령 56세 등으로 못박고 있다. 43세까지 소령 진급을 못한 대위는 강제 전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어 강제 전역자가 속출하는 구조다. 부사관도 계급정년이 있는데 △하사 40세 △중사 45세 △상사 53세 등이다. 부사관은 계급정년보다 장기복무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해 강제 전역하는 사례가 더 많다.

 

 ◇6급 군무원 면접장에 영관급 몰려 

제대군인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한 지원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국방부는 제대를 앞둔 군인에게 전직 지원 교육기간으로 1~3개월(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자) 또는 10~12개월(10년 이상 복무자)을 보장한다. 국방전직교육원에서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제대 뒤에는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가 교육비 지원, 취업 알선 등을 해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일자리 부족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제대군인들의 생각이다. 예비역 육군 대위 김규호(가명)씨는 학사장교로 입대한 뒤 장기복무 심사에서 떨어져 입대 7년 만인 2017년 군복을 벗었다. 그 뒤로 부모 집에서 용돈을 받으며 산다. 김씨는 “나라에서 제대군인에게 해주는 교육비 지원이나 채용 박람회 같은 제도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너무 부족해 소소한 취업 지원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군인연금을 못 받는 제대군인들은 애매한 나이 탓에 신입사원으로 응시하기도, 관리자급으로 선발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군 경력을 인정해주는 군무원, 예비군 관리자 등 군 관련 일자리를 선호하지만 이런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2016년 육군본부의 취업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취업한 제대군인 중 군무원이나 공공분야 일자리를 얻은 비율은 24.3%에 그친다. 김씨는 “5급 군무원이 대위급인데, 내가 급을 낮춰 간다고 생각했던 6급 군무원 채용 면접에 소령과 중령 출신들이 빼곡했다”고 전했다. 30, 40대 제대군인은 민간 대졸자는 물론 군인연금을 받는 상위계급 제대군인과도 일자리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김씨는 국내 구직이 여의치 않자 연봉 2,000만원을 주는 베트남의 한인 기숙사관리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현재는 정부 부처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김씨는 “계약직이어서 월급도 오르지 않고 별다른 비전은 없다”면서 “공무원 근무기간과 군 복무기간을 합산하는 연계 연금제도의 혜택이라도 받을 생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취업 성공자 “취직 준비한다고 상관이 비난” 

물론 민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제대군인도 있다. 예비역 중사 서정훈(35)씨는 11년 6개월 동안 복무하고 지난해 1월 전역했다. 장기복무 심사를 통과해 향후 20년 정도의 군 생활을 보장 받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 제대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5개월 만에 반도체 분야 대기업 1차 협력업체에 IT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급으로 취직했다. 정규직으로 연봉이 7,000만원이 넘는다.

민간기업 취업 이면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서씨는 전역 3년 전부터 주경야독을 하며 꿈을 키웠다. “2년제 야간대학을 다니기 위해 일과를 마치고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수업을 들었어요. 주말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 다녔고, 당직 근무는 학교나 학원에 안 가는 날에 몰아서 했습니다.” 훈련 중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을 지우지 못한 채로 수업을 들은 날도 있었다.

재취업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서씨처럼 철저한 전직 준비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서씨 역시 전직 준비과정에서 상관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직도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다고 했다. “퇴근 후에 학교를 다니는 건데도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혀 윗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았죠. 노골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나마 장기간 군 생활을 했기에 버텼지만, 초급 간부들은 이런 분위기를 극복하고 전직 준비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성공’은 예외적이었다는 게 서씨의 생각이다.

 ◇실질적인 구직난 해소 방안은 

제대군인 구직난은 단순히 퇴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 후 생계 걱정을 해야 한다면, 현역 군인이 제대로 군 복무에 전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윗사람 ‘심기 경호’에 신경 쓰는 군의 후진적 모습도 제대 후 취업난에서 비롯된 과도한 진급 경쟁이 유발했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외국처럼 기업에 제대군인 일자리를 만들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국내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국가유공자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우대 채용하는데, 제대군인도 함께 우대해주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만큼 민간인 구직자의 취업기회가 줄어들게 되고, 군 가산점 제도마저 1999년 위헌 결정으로 사라진 터라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 방배동의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3일 군 출신 직원이 제대군인 안내 책자를 살펴보고 있다. 이곳을 비롯한 전국 지원센터 10곳에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대면 상담을 최소화하고 전화와 이메일을 활용한 비대면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박효선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일반 구직자도 취업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제대군인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건 만만치 않다”며 “정부가 주도해 군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 장병은 외국군과 달리 교육ㆍ훈련 이외에 풀 뽑기, 눈 치우기, 도랑 파기, 막사 짓기와 같은 시설관리는 물론 취사 등 온갖 잡무에 동원된다. 군 장병은 전투력 향상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게 하고, 비전투 업무는 외국처럼 민간군사기업(PMC)에 맡기자는 것이다. “군은 군답게 전투력을 높일 수 있고, PMC에는 제대군인이 취업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제대군인 수를 줄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동호 연구위원은 “다른 선진국은 본인이 희망하면 계속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하거나 군 관련 일자리를 넉넉히 마련해 준다”며 “계급정년이나 장기복무 선발제도를 통해 애써 양성한 간부를 많이 내보내는 것은 우리 군의 특수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제대군인 취업난을 해소하려면 계급정년 등을 없애고 본인이 희망하면 계속 복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군 관련 일자리를 확대하거나 장기 복무자를 늘리면 예산이 더 든다는 게 문제다.

민간 구직급여와 제대군인 전직지원금 비교. 그래픽=강준구 기자

단기 개선과제로는 전직 지원금 인상이 꼽힌다. 제대군인은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직급여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는 2008년부터 구직활동을 하는 제대군인에게 최장 6개월간 전직 지원금을 준다. 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자는 월 25만원, 10년 이상 복무자는 월 50만원을 지급한다. 전직 지원금 지급의 법적 근거인 제대군인 지원법은 ‘고용보험 월 구직급여 상한액의 50% 범위에서 전직 지원금을 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군인은 민간 근로자와 달리 고용보험 본인부담금 50%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금 상한을 구직급여의 절반으로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민간 구직급여는 2008년 120만원에서 수 차례 인상돼 올해 198만원에 이르지만, 구직급여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전직 지원금은 도입 이래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구직급여 인상률만큼은 전직 지원금을 올려줘야 한다고 국가보훈처는 요구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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