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부터 피아노ㆍ바이올린 소나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을 남긴 베토벤. 하지만 오페라만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베토벤이 남긴 오페라 작품은 ‘피델리오’가 유일해서다.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통해 베토벤은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생각보다 ‘피델리오’에 꽤 공을 들였다. 1805년부터 1814년까지 여러 번 개작했다. 작품은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실화에 바탕을 둔 희곡 ‘레오노레 또는 부부의 사랑’이 원작이다.
‘피델리오’는 여주인공 레오노레가 억울하게 지하 감옥에 갇힌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출한다는 내용이다. ‘피델리오(Fidelio)’란 제목 자체가 신뢰, 신의를 뜻한다. 남자 간수로 변장하고 감옥에 잠입한 뒤 남편을 가둔 감옥소장 피차로에 맞서 싸우는 대목에선 진취적인 여성상이 도드라진다. 플로레스탄이 마침내 자유를 되찾고, 그로 인해 부부가 행복을 되찾는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베토벤이 교향곡 등을 통해 선보인 키워드 자유, 구원, 인류애가 잘 녹아 든 작품이다.
모든 무대극이 그렇지만 ‘피델리오’는 연출 방식에 따라 느낌이 확 바뀐다. 메가박스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음달 8일까지 상영 중인 ‘피델리오’는 그 중에서도 ‘현대적 연출’이 돋보인다. 2015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독일의 클라우스 구트가 연출한 이 작품은 쇠창살 하나 없이, 관념적인 조형물과 그림자로만 감옥을 표현해 냈다. 죄수들이 입은 새하얀 옷과 간수들의 새까만 옷을 대비시켜 선악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도 인상적이다. 추상적인 무대 뒤에 어울리게 배우들의 연기는 행위 예술을 연상시킬 만큼 독특하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의 박력 넘치는 연주도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올 하반기엔 실제 무대에서 ‘피델리오’를 만날 수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10월 22일~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기 요스텐이 연출하는 ‘피델리오’를 올린다. 세바스티안 랑 레싱 지휘 아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무대를 채운다. 다양한 버전의 ‘피델리오’는 있으나 메시지는 하나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환희를 얻는 법입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