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크기와 색깔을 달리하는 연두빛 새 잎들에게 온 마음이 빼앗기다가, 화려한 꽃들의 세상이 되는 5월이 되면 문득문득 누군가가 뇌리에 떠오르면서 꽃 한 송이를 들고서 만나러 가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옛적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회한의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아온 것도 모두 누군가의 영향에 의해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고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최선을 다하면서 잰 걸음을 떼어왔던 게지요. 많은 사람들이 추억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왠지 부모님의 얼굴이 가장 뚜렷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런지요.
물론,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는 시험문제 한 개씩 틀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꼬집힌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제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동생들과 단체로 벌을 섰던 억울함, 밥이 먹기 싫은데도 억지로 먹이려고 애쓰시는 어머니로부터의 귀찮음, 방청소를 할 때 깨끗하지 않다고 여러 번을 새로 닦으라고 지적하시는 어머니로부터의 짜증감 등등으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언짢은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대체로 훈훈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침마다 저의 머리를 빗겨주셨고, 등굣길에 자전거를 태워주셨고, 포도나무에 그네를 달아서 태워주셨고, 제가 밥을 잘 먹지 않으면 조용히 제 손을 잡고서 동생들 몰래 집을 나서서는 카레라이스나 오므라이스를 사주셨던 아버지!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스러워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버지보다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사랑에 애증이 포함되는지도 모르겠고, 어머니와 함께한 스토리가 더 많아서 복잡다양한 감정들이 더 많이 얽혀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무척 슬프기는 했지만 통곡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유 없이 대성통곡이 나왔습니다. 제 몸에서 대단히도 큰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허전함을 메꿀 길이 없어서 먹는 것으로 계속 채워나갔더니 몸무게가 10kg이나 불어나 버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저한테 잘해주신 것보다는 어머니께서 저한테 잘해주신 것들이 훨씬 많긴 합니다.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많지요. 매일 세끼 밥을 해주셨고, 씻겨주셨고, 옷을 갈아 입혀주셨고, 공부를 봐주셨고,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셨고, 저의 살아가는 길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주셨습니다.
제 나이 46살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제가 어머니에게 평소에 잘해드린 것이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앞으로 차차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어머니의 그 말씀을 명심하거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제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의 말씀이 진하게 와닿곤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그 말씀을 제자들에게 사용하곤 합니다. 제자들이 저에게 은혜 갚을 길이 없다고 말하면 저는 “멀리 있는 나한테 마음 쓰지 말고 자네와 함께 인연이 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면 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어쩌면 ‘감사’와 ‘보은’도 세상의 순환 이치에 따라 돌고 도는 현상을 띄나 봅니다. 세월이 되돌아갈 수 없고, 우리가 살아온 행적을 되돌릴 수 없듯이 지나간 세원에 있었던 감사로운 마음은 언젠가는 갚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바쁜 세상에 마음뿐일 경우가 많더군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주로 가족이겠지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후회없이 사랑을 부어주는 일이 곧 은혜로운 분들에게 보은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사랑과 감사와 보은이 가득 넘치는 오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정화 한국숲유치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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