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폭동진압법 발동, 시위 진압에 연방군 투입 가능성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흑인 사망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으로 확산 중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겨냥, 수도 워싱턴 외곽에 현역 육군 1,600명을 전격 배치했다. 하지만 시위는 더 확산되면서도 곳곳에서 촛불집회와 우산 시위 등 다양한 방식의 평화시위가 벌어지는 등 폭력성은 줄어드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사시 연방군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조너선 호프만 미 국방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명령에 따라 노스캐롤라이나주(州) 포트 브래그와 뉴욕주 포트 드럼에서 현역 군 병력이 수도 지역(NCR)에 있는 군 기지로 파견됐다”고 밝혔다. 그는 “군사경찰(헌병)과 보병대대 등이 포함돼 있고 총 1,600명 정도”라며 “이들은 경계태세를 강화한 상태이지만 워싱턴 내에 배치된 것은 아니고 시위 진압 등 민간 작전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백악관 등 주요 연방 시설물이 밀집한 워싱턴에서 경찰만으로 시위 진압이 어려울 경우 결국 군을 투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전날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미 전역에 확산된 폭동과 무법 사태를 끝내기 위해 군과 민간의 모든 연방 자원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807년 제정된 ‘폭동진압법’을 발동하면 대통령이 주지사의 동의 없이 시위 진압에 정규군을 동원할 수 있다.
앞서 에스퍼 장관이 워싱턴의 치안 유지를 위한 주방위군 지원을 요청했지만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버지니아ㆍ뉴욕ㆍ펜실베이니아ㆍ델라웨어주 등 네 곳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우리가 필요로 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델라웨어주는 “백악관식 강경 대응은 혼란만 더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협조만으로도 워싱턴에는 이미 대규모 병력이 투입돼 있다. CNN방송은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미 3,600명의 주방위군이 배치됐고 1,300명이 추가로 합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방군 투입이 실제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전반적으로 시위는 여전히 확산세이지만 무엇보다 폭력을 동반한 과격시위나 폭동 양상으로 번지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렝겔 주방위군 사령관은 이날 “전국에 걸쳐 시위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증가했지만 폭력이 감소하고 상황이 호전됐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연방군 투입의 명분을 찾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평화시위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워싱턴에서는 수천 명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침묵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린 당시를 재현한 것이다. 대도시 뉴욕 등 일부 지역에선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도 열렸다. 워싱턴주 시애틀 의사당 앞에선 시위대가 경찰의 후추 스프레이와 최루탄 진압에 맞서 홍콩 ‘우산혁명’ 때처럼 우산을 펼쳐든 채 평화시위를 이어갔다.
CNN방송은 이날 뉴욕시내 일대에서 벌어진 시위 양상에 대해 “광범위한 약탈이 벌어진 전날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는 빌 더블라지오 시장의 평가를 전했다. 워싱턴 지역방송 WUSA도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나 폭력사태, 재산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는 것도 행정부로선 부담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평화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킨 뒤 교회로 가 기념촬영을 한 것을 두고 비난이 거세자 동행했던 에스퍼 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조차 “시위대 해산 상황과 대통령 일정을 전혀 몰랐다”고 거리를 둘 정도다.
폭동진압법 발동에 대한 법조계 의견도 엇갈린다. 대통령만 결단하면 된다는 의견과 주정부 기능의 완전 무력화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이를 반영하듯 AP통신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도 사석에선 주정부 스스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물러선 듯하다”고 보도했다.
시위 확산에 따라 미 전역에 투입된 주 방위군 규모는 워싱턴과 29개 주에 1만8,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CNN은 총 배치 병력이 2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며 “이라크ㆍ시리아ㆍ아프가니스탄 파병 인원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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