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부자언니’ 유수진, 사기로 3억5천 날리고 비로소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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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부자언니’ 유수진, 사기로 3억5천 날리고 비로소 깨달은 것

입력
2020.06.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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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53>재테크 멘토 유수진

유학 준비하다 아버지 사업 부도로 생업 전선에

어머니 화장대 즐비한 샘플 보고 ‘부자 되자’ 결심

“돈은 결국 사람, 삶 바꾸지 않으면 새어나간다”

2030 여성들의 재테크 멘토로 높은 인지도를 쌓은 유수진씨를 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서재훈 기자

‘부자언니’. 유수진(44)씨의 다른 이름이다. 상표 등록까지 해뒀으니, 법적으로도 그의 것이 맞다. 이 부자언니라는 네 글자에서 뽑아낼 수 있는 의미는 몇 개일까.

일단 부자인 언니. 맞다. 그녀는 이미 2008년 연봉 6억원을 달성했다. 그 액수를 심지어 삼성생명 입사 3년 만에 이뤘다. 매년 연봉을 3배씩 올린, 성장의 결과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고가의 수입 자동차를 굴렸다. 국내에 5벌 밖에 없다는 비비안웨스트우드 드레스? 내가 입어야지. 택시 기본요금 같은 거, 당연히 몰랐다.

부자가 된 언니란 뜻도 있다. 언니도 처음부터 부자는 아니었단 얘기다. 대학원에 다니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20대 초반, 집이 망했다. 언니는 결혼했고, 여섯 살이나 어린 남동생은 아직 학생이었다. 사기를 당한 아버지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어느 날 화장품 가게에서 얻어온 샘플들이 놓인 어머니 화장대를 보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났다. 결심했다.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그런데 그녀는 부자가 된 자신의 정체성에 왜 ‘언니’를 붙일까. 자산관리사로 첫 발을 내디딜 때 주고객을 젊은 직장인 여성으로 정했다. 고객 상담을 몇 번 해보니 나이든 남성들은 ‘어린 여자가 뭘 알아’ 식의 태도가 다반사였고, 주부들은 계약서 사인 직전에도 남편이 ‘노’하면 도루묵이었다. 2030 여성들은 달랐다. 자신 같아서 세심한 상담이 가능했다. 휴대폰 번호도 그래서 아예 ‘2030’으로 바꿨다.

그녀는 보험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 평생 자산관리를 조언했다. 보험 상품은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해결할 리스크 매니지먼트로 활용하도록 설계해주고, 펀드와 주식까지 공부해 고객이 돈을 불리도록 깨알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니 고객이 고객을 소개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럼 완벽한 부자인가. 언니도 실수를 한다. 크게 사기를 당했던 거다. 자신 때문에 손해를 본 이들의 돈까지 물어줘 3억 5,000만원을 날렸다. 얼굴이, 마음이 가뭄 때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때 명상을 배우면서 자신을 돌아봤다. 자만이 아니라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객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인생을 바꾸길 바라게 된 것도 그때다. 그건 ‘언니의 마음’이었다.

부자언니는 아직 엄마는 아니다. 아이가 생기면, ‘부자엄마’로 어린이 경제 교육을 임상 적용해보겠다는 게 다음 목표다. 돈이 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 어디도 없다는 게 그녀는 늘 답답했다.

거기다 언니는, 한국의 부자언니가 아니라 글로벌 언니를 꿈꾼다. 내 손길이 필요한 동생들이 어디 한국에만 있겠냐는 거다. 조만간 중국과 베트남의 2030 여성들이 ‘부자언니’를 읽고, 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자언니라는 단 네 글자에, 이런 풍요한 빛깔을 담기까지 쉬운 건 없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삶이 됐다”는 그녀를, 6월의 첫날 마주했다.

◇월급 80만원 인턴, 3년 뒤엔 연봉 6억

그녀는 자기 인생의 판을 바꿀 도구로 돈을 선택했다. 서재훈 기자

-대학원 다니면서 유학 준비를 하다가 인생의 경로가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네, 친가가 모두 수재셨어요.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 고모들이나 작은 아버지는 모두 의사나 간호사, 교수가 됐죠. 저도 교수가 되고 싶어서 학부 전공인 환경학을 살려서 대학원에 갔어요. 미국 유학을 준비했죠.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난 거예요.”

-집안 형편이 어느 정도로 어려워진 건가요?

“폭삭 망했죠.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해서 아빠도 모른 채 연대 보증인으로 빚까지 떠안게 됐어요. 다행히 아버지 명의가 아니었던 집만 한 채만 남았죠. 사기를 당하고 아버지는 소파에 드러누워 매일 TV만 보셨어요. 전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가 싫었죠. 아무리 망했다지만, 뭐라도 일을 찾아서 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사기를 당해보니까 그때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가 돼서 너무나 죄송했죠.”

-집에 돈 벌 수 있는 다른 사람은요?

“저뿐이었죠. 언니는 결혼했고, 저보다 여섯 살 어린 남동생은 롯데리아에서 화상 입어가며 감자를 튀겨봤자 얼마 못 벌었고요. 저는 석사 2년차였는데, 다행히 교수님 소개로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연구원 밑에서 일하는 계약직 연구생이었죠.”

-월급이 얼마나 됐나요?

“80만원 정도. 그래서 그것 말고도 취미로 해왔던 살사 댄스 강습도 하고 부전공으로 한 영문학 실력을 살려서 영어 문제은행 출제 아르바이트도 했죠. 제 능력으로 돈 벌 수 있는 일은 다 찾아서 한 거예요. 그래도 한 달에 쥐는 돈은 다 합쳐 130만원 남짓이었죠.”

중간에 서울의 식약청(현재는 식약처로 승격, 오송으로 이전) 본청으로 옮겨와서 2004년초까지 일했다. 3년여를 다녔지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계약직이었으니까. 중간에 외국계 건강기능식품 회사인 유니시티코리아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였다. 본사의 제품 성분을 한국 식품위생법에 맞게 표기하는 레귤레이터리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곳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책임자급이 아닌 실무자들을 정리하는 걸 보면서 ‘저게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거다. 그러던 차 삼성생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완전히 다른 직종인데요.

“식약처 다닐 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은 어떡하나 싶어서 제 발로 가서 종신 보험을 든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담당 보험설계사가 저를 좋게 보고 소개를 한 거예요. 삼성생명에서 은행의 PB(Private Banker) 같은 조직을 신설한다면서요. 기존의 주부 중심 FC(보험설계사) 조직도, 대졸 남성 설계사들의 LT(Life Tech) 사업부도 아닌 대졸 여성들을 고용해 WLT(Wealth Life Tech)라는 일종의 특수부대를 전략적으로 만들어 키우려 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전 회사의 연봉은 최소한으로 보장해주는 조건이었죠. 그런데 결국 보험 팔라는 얘기 아닌가 싶어서 6개월을 고민하다가 지점장 면접을 보면서 이직을 결심했죠.”

◇‘앞으로 5년 뒤엔?’ 질문에 말문이 막히다

그녀는 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자신 역시 가세가 기울어 가족들이 돈 때문에 힘든 일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출발이었다. 서재훈 기자

-어땠기에 그랬어요?

“면접이라기보다 강의였는데요. 저한테 물으시더라고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 건지. 말문이 턱 막혔죠. 그때까지 저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당장 코 앞에 빚 갚는 거 외에는 목표가 없었거든요. 내 미래는 없이 그저 어두운 터널을 걷는 느낌이었죠. 5년 뒤, 10년 뒤엔 어떻게 살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구나 처음 깨달았어요. 그런 인생 설계와 함께 자산관리 계획을 짜주는 직업이라면 괜찮을 거 같아서 결정했죠.”

-들어가자마자 3W(일주일에 보험 계약을 3건 이상 체결)를 연속으로 한 걸로 유명한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걸 달성하려면 일단 내가 전화할 리스트를 만들어야 해요. 적어도 30명. 전화를 돌려서 약속을 잡죠. 미팅을 최소 두 번은 해야 계약이 돼요. 첫 미팅은 고객의 재정 상황을 파악하는 자리, 두 번째는 솔루션을 갖고 가는 미팅이죠. 그런데 첫 미팅만 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럼 리스트 30명에서 적어도 15명한테서 두 번째 미팅을 잡아내야 그 중에서 계약이 3건 나올까 말까 해요. 그걸 매주 하려면 출근하자마자 오전 10시반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하루에 4, 5명씩을 만나야 하죠. 그때는 연휴가 있으면 막 화가 났어요.”

-왜요?

“아니, 나는 3W를 해야 하는데 왜 연휴가 있어서 쉬어야 하는 거야. 휴일이면 하루만 쉬지 왜 3일이나 쉬나 싶었던 거죠. 그럼 고객을 그만큼 못 만나니까요.”

-전화를 돌릴 리스트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엔 지인들로 적죠. 그런데 제가 학교를 서울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고향도 서울이 아니니까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다음엔 결국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야 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소개를 해줄까 생각해본 거죠. 지인이지만 제가 이 사람한테 만족스런 파이낸셜 플래닝을 해줘야 고마워서라도 소개를 해줄 거 아니에요? 제가 식약청 다닐 때 아쉬웠던 게 월급통장 만든 은행에 가서 재테크 상담을 하면 팜플렛이나 몇 장 주면서 이 중에 골라서 적금 들라는 게 다라는 점이었거든요. 근데 뭐가 뭔지 알아야 들죠. 포털 사이트에서 재테크를 검색해봐도 방법을 찾을 수가 없고요. 그래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답을 주는 상담을 해주자고 생각했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요?

“월급에서 생활비를 뺀 돈으로 단기, 중기, 장기 재테크 플랜을 짜줬어요. 예를 들면, 단기용은 상호저축은행 이자율 5.5%짜리 적금 상품으로, 여윳돈은 MMF(머니마켓펀드), CMA(종합자산관리계좌)에 넣게 하고, 종자돈이나 노후 준비는 보험회사 장기 변액 상품으로 짜고요. 펀드가 유행하기 시작한 2005년 후반에는 펀드 정보도 고객들에게 알려줬죠. 그렇게 몇 년 뒤, 몇 년 뒤 자산 로드맵을 고객이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해줬어요. 다들 이런 상담은 처음 받아봤다고 했죠. 그러니까 한 사람이 고객이 되면 그가 5명을 소개해주는 거예요. 그렇게 전화를 할 리스트가 늘어난 거죠.”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요.

“아직도 기억나요. 가산디지털단지 쪽 통신회사에 다니던 분이었는데 점심 시간에 제가 찾아가서 만나기로 했어요. 김밥을 사서 회사 회의실에서 상담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 고객이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면서 점심 시간 지나서 만나자는 거예요. 회사 밖 벤치는 4월쯤이라 춥고 황사까지 있어서 안 되겠고, 건물 안엔 마땅히 먹을 곳이 없더라고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 뚜껑을 닫아놓고 앉아서 김밥을 먹는데 너무 화가 나더군요.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이럴까 싶어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어요. 상담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으니 그냥 돌아가겠다고요. 그 다음부터는 고객을 찾아가지 않고 회사로 오시라고 했어요.”

-어떻게요?

“우리회사 미팅룸을 활용했죠. 재테크 상담이니 한번 하면 두 시간 정도는 걸리는데다 자산 현황을 파악해야 하니 커피숍 같은 시끄러운 곳에서 하기에도 적절치 않거든요. 그러니 저희 회사로 오시는 게 어떠냐고 한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고객들이 부담을 덜 느끼시더라고요. 사실 누가 찾아오면 뭐라도 하나 해줘야 할 것 같잖아요. 또 제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확인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나중에는 회사 미팅룸이 거의 제 전용 상담실이 될 정도였죠.”

-그렇게 해서 연봉이 어떻게 늘어났나요?

“보험 계약을 체결하면 수수료가 배당되거든요. 그 수수료로 받은 연봉이 입사 첫 해 1억원이 넘었죠. 둘째 해엔 2억7,000만원, 셋째 해엔 4억3,000만원, 넷째 해엔 6억원이 됐어요. 그리곤 사내 이사로 승진했죠. 3W를 연속 4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업계에서 저더러 ‘뭐 저런 괴물이 있나’한 거죠. 하하.”

◇연봉 최고점 찍었을 때 당한 사기

그녀는 연봉 최고액을 찍었을 때 사기를 당했다. 그런데 그 사건조차 성장의 계기로 만들었다. 실패가 아니라 교훈이 된 거다. 서재훈 기자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 제가 그렇게 실적을 내니까 ‘쟤 치마 걷어서 영업 한다며’ 하는 나쁜 소문도 돌았어요. 우스웠죠. 내 고객은 99%가 여자인데 말이죠. 몇 번 고객을 만나보니 나이 든 남자나 주부는 맞지 않더라고요. 반면 싱글 여성들은 나와 같은 입장이니까 어떤 상담을 받고 싶어할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중적으로 2030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거예요.”

-타기팅을 그렇게 해보니 어땠나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첫 해에 3W를 50주 연속으로 하니까 지점장님이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셨어요. 맨 앞장에 ‘2005년 WLT에는 유수진이 있었습니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그때 ‘아, 이제는 100주 연속으로 3W를 해야겠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친구들(고객)이 내가 짜준 계획으로 돈을 모으고 인생이 바뀌는 걸 보면 내 일처럼 좋고 보람이 있었거든요. 고객들이 유수진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달라졌다고 했죠. 그래서 그 힘든 일을 버텼나 봐요.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누군가의 생각의 뿌리를 흔들어서 다른 삶을 살게 하는 일을 나 말고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 있어?’ 하는 성취감과 보람이죠.”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는데 1년에 열흘씩 과로로 입원해가면서까지 일한 이유는 보람이 전부였나요?

“목표도 있었죠. 첫 지점장님 덕이 커요. 단기 목표는 매년 3W를 해서 연봉 1억을 넘기는 거였어요. 두 번째는 3W를 100주하는 것, 그 다음은 연봉을 3배 올리는 거였죠. 보험업계에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라고 연봉 1억원(환율 적용) 이상에 유지율도 좋은 보험 설계사들의 모임이 있어요. 그 다음 레벨이 COT(Court of the Table)인데 MDRT의 연봉 3배를 달성해야 가능하죠. 거기서 또 3배가 되면 TOT(Top of the Table) 회원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입사 첫 해 MDRT, 둘째 해에 COT, 셋째ㆍ넷째 해에 TOT가 됐죠.”

-재미있었나요?

“재미있었죠. 계단식으로 성장했으니까요. 나중에 연봉 6억원이 됐을 때 사기도 당했고요. 하하.”

-무슨 사기였나요.

“제 고객 중 갤러리를 하시던 분 소개로 외국산 카메라 수입업자를 알게 됐어요. 자산관리를 해달라고 해서 만났는데 그 카메라 회사야 말로 정말 좋은 투자처라면서 자기 딜러 넘버로 주문을 하면 이만큼 수익이 나온다면서 보여주더라고요. 한번 해보라기에 그 자리에서 카드로 결제를 하니까 한 달도 안 돼서 정말 수익이 입금되더라고요. 주위에도 제가 엄청 소개를 해줬죠. 사기였던 거예요. 제가 그 업자에게 보낸 돈은 4,000만원 정도였지만, 제 소개로 주변에서 보낸 돈에다 애초 약속한 수익률까지 따지면 총 3억 5,000만원이 날아간 거였죠. 그들에게는 말 않고 제 돈으로 그걸 다 물어줬어요.”

-사기를 당하고 나서 어땠나요.

“처음엔 자책이었죠.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두 번째는 분노예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작정하고 누군가를 속이나. 나중에 고소해서 대질 심문하는데 제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걸 보면서 속으로 ‘저 자의 껍데기를 벗겨서 기름에 튀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때 또 엄마가 위암에 걸린 거예요. 초기에 발견한 게 천만 다행이었죠. 그러니 그 시절엔 병원,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검찰만 왔다 갔다 하면서 산 거예요.”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돈이 왜 중요할까. “물 한 병조차 돈 없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돈, 돈 하지 않을 수 있나요? 저는 그걸 사람들이 인정하면 좋겠어요.” 서재훈 기자

-어떻게 극복했나요.

“선배 소개로 지금까지 제가 멘토로 섬기는 분을 그때 만나게 됐어요. 제가 ‘재벌 토끼’라고 별명을 붙인 분인데 자산이 2,000억원 정도 되는 부자시죠. 처음에는 소송을 진행할 변호사를 소개 받으러 간 거였어요. 그런데 그 분이 제게 숙제를 내주시더라고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적어오라’는 거예요. 황당했죠. 사기 친 놈이 잘못했지, 내가 잘못한 게 뭔가 싶었어요. 없는 거 같다고 그랬더니 잘 생각해보라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잘못이 있더라고요.”

-뭐던가요.

“첫째, 욕심이 났던 거예요. 2005년 삼성생명 입사해서 어린 나이에 제법 돈을 많이, 빨리 벌었거든요. 근데 고작 3, 4년이 지나 6억 연봉 만들고 나니까 쉬고 싶었던 거예요.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어디 투자해놓으면 식구들 생활비는 좀 나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 거예요. 그 전에도 제 주위에 사기꾼은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 즈음 그 자가 나타난 거고 그 얘기가 제 귀에 들어온 거예요. 둘째는 자만이었어요.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은 거죠. 업계에서 신화 같은 성적을 달성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잘난 거야. 내 생각대로 했고 성공했으니까 남의 얘기를 듣지 않게 된 거죠. 그런 투자 얘기를 들었을 때 엄마나 언니한테 한번이라도 물어봤으면 과연 투자도 하고 주위에 소개도 해주라고 했을까 싶었어요. 근데 나는 한마디 상의를 안 했던 거예요. 내가 잘못한 게 맞네 했죠. 멘토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말하니까, 그런 점을 손으로 써보고 인지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는 성공했다는 생각을 할 법 한데요.

“성공?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 이게 성공이야. 내가 정해놓은 지점까지 온 것뿐이죠. 심지어 앞으로 목표까지는 가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늘 엄격하군요.

“맞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 괴롭히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반대로 내려놓는 수행도 했어요.”

-언제요?

“그것도 사기 당하고 나서예요. 내려놔야지, 내려놔야지 해도 잘 안 되는 법인데, 억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일을 살다 보면 겪게 되더라고요. 강제로 내려놓음을 당했을 때 괴롭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 게 수행이거든요. 지금도 밤에 속이 시끄러우면 자기 전에 누워서 와선을 해요. 5분 정도 하고 나면 편안하게 잠이 들죠. 이 힘든 세상을 우울증이나 조울증 걸리지 않고 살려면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됐을 때 마음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해요. 나중에 그래서 마음 정화 운동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명상을 배운 건가요?

“네, 전문가 과정을 두 학기 마쳤어요. 3학기째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못하고 있어요. 제게 큰 이모뻘 되는 고객 덕분에 배우게 됐죠. 어느 날 저를 보시더니 ‘사람이 왜 그렇게 진기가 빠졌느냐’는 거예요. 사기를 당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이만저만한 일을 겪었다고 말하니까, 자기 수행처에 함께 가겠냐고 하시더군요. 그때 붓다 팔라 스님이 이끄는 경남 김해의 수행도량 ‘사띠 아라마’를 알게 됐어요. 가서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저녁까지 계속 수행을 했죠. 처음에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왜 내가 여기 온다고 했을까, 피곤해 죽겠네’ 했는데, 3일째 되는 날 달라졌어요. 눈을 떴는데 단전 밑에서부터 에너지가 주욱 올라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내가 얼만큼 비어 있었는지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4일째 수행처를 나오는 날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슨 의미의 눈물이었을까요.

“마음의 탄력이 돌아온 거였어요. 어린 아이들을 보면 감정 표현이 자유롭잖아요. 울다가도 갑자기 웃고요. 그게 마음의 탄력이 좋아서 그렇거든요. 어른이 되면 어느 새 마음 근육의 탄력이 떨어져서 늘어져요. 아이들은 탄력이 좋으니까 울다가도 금방 잊죠. 수행은 마음 근육의 탄력을 높여줘요. 외부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생길 때 탕 튕겨낼 힘을 키우는 거죠. 마음을 쉬게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알았어요. ‘여행 가고 호텔 가서 쉬는 건 쉬는 게 아니었구나. 마음은 여전히 쉬지 못한 거였구나. 마음을 한군데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걸 운동 시켜서 근육을 길러야 하는구나’ 알았죠. 다시 실패하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별로 겁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할 힘이 생겼죠.”

◇자산관리사로서 ‘조기 은퇴’한 까닭

그녀는 3년 전 현업에선 은퇴했지만, ‘부자언니’ 자체를 콘텐츠로 만들어 TV에서, 유튜브에서, 책에서 전파하고 있다. ‘글로벌 부자언니’가 다음 목표다. 그녀가 한국일보 영상 채널 PRAN과 촬영하는 모습. 서재훈 기자

-일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보통 돈을 숫자로 여기는데 돈은 결국 사람이에요. 자산관리사로서는 2017년 은퇴를 했으니까 고객을 안 만난 지 이제 3년이 넘었거든요.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면서 느낀 건 아무리 좋은 정보를 줘도 그가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같은 정보를 줘도 누구는 돈을 모으고, 누구는 모으지 못해요. 결국 사람이라는 얘기죠. 제대로 돈 관리를 하려면 마음 공부, 철학 공부, 심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수행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객들이 마음 공부를 하게 해야겠다, 자존감을 키우게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부자가 되는 건 결국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가능하거든요. 내가 돈을 담을 그릇이 되지 않으면 돈은 결국 빠져나가요.”

책 ‘부자언니 부자특강’에서 그녀가 그렇게 ‘땡큐 리스트, 투두 리스트’를 쓰라고 강조한 거다. 인생의 중심을 나에게 두기 위한 기초였다.

-창업도 했죠.

“9년 만에 삼성생명을 나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법인을 떠안게 됐어요. 언니를 대표로 해서 자산관리컨설팅 회사로 만들었죠. 제가 은퇴했으니 지금은 법인으로만 존재하면서 제 콘텐츠 수익을 관리하고 있어요.”

-은퇴를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 마음대로 안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제 고객이 800명이 넘는데, 그 중에서 건물주는 3명뿐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가 시키는 대로 안 했다는 거예요? 하하. 게다가 이 일을 해보니, 고객이 돈을 벌면 당연한 거고 손실을 입으면 제 책임이 되더라고요. 제가 준 정보대로, 컨설팅대로 하지도 않고 말이죠. 사람을, 인생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쌓여갔죠. 끝도 없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데에 지치더라고요.”

그래도 그녀는 ‘부자언니 유수진의 부자 재테크’ 온라인 카페는 유지한다. 이곳에서 자산관리 조언, 여러 이벤트, 외부 업체와 제휴 사업 등을 통해 여전히 동생들을 챙긴다. 이벤트 때엔 목표를 달성한 이들에게 사비로 상품까지 줘가면서 말이다. 회원이 7만 3,000명에 달하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은퇴했지만, 은퇴를 안 한 거네요. 카페 운영만도 힘들 텐데.

“남편도 그래요. 왜 그렇게 사냐고. 저희는 이미 노후 준비까지 다 끝났거든요. 전 아이들(카페 동생 회원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돈이라는 걸 나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돈이란 뭘까요?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려면 돈이 없이는 안 되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돈이 많아지니 행복해졌나요?

“돈 때문에 적어도 힘들지 않는 것, 그게 행복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생계가 걱정인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오늘 받은 일당으로 치킨을 사와서 뜯는 순간은 행복하겠지만, 그뿐이죠.”

◇결핍이 나를 언니로 만들었다

그녀는 “남들처럼 살아서는 다른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뼈를 갈아 넣으며 일했던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여유도 없었겠죠.” 그녀가 체득한 삶의 진리다. 서재훈 기자

-다음 삶의 목표는 뭔가요?

“요즘은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고 있어요. 되도록 많이 쉬면서 몸도 만들고요. 원래 체중보다 4㎏이나 불어난 상태죠. 최근 몇 년 간 임신과 유산을 반복했거든요. 작년 11월 유산 때는 정말 시험관 시술을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불행하더라고요. (신이) 주시면 갖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마음 먹었는데 올해 조급해지더라고요. 이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닌가 싶어서.”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노력은 해보고 싶은 거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처럼 훌륭한 유전자는 세상에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 경제 교육을 임상 적용해보려고 해요!”

-커리어 목표는요?

“중국이나 베트남에 가고 싶어요. 국내 자산관리사 중에 글로벌하게 진출한 사람은 아직 없잖아요? (미소) 베트남어도 배우고 있고, 중국에서 책을 낼 준비도 그래서 하고 있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 삶의 도가 뭔가요?

“진심이요. 저는 늘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진심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했어요.”

-언니란 뭘까요?

“나보다 먼저 살아서, 나한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은 존재. 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저처럼 얘기해주는 언니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거든요. ‘아니야. 절망하지마. 지금 네 상황이 이렇지만, 이러이러하게 하면 바뀔 수 있어. 언니도 그랬거든’ 하면서요.”

그건 책임감이었다. 한 걸음 앞서 간 세대의 책임. 언니로서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와 의리를, 그녀는 돈에 담고자 한 것 아닐까. 먼저 인생의 지름길도, 돌아가는 길도 익혔으니 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제대로, 잘 살아야 한다. 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부자언니 부자특강’ 중에서)

‘부자’라는 단어엔 인간미가 없다. 그저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일 뿐 가치를 담은 단어는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대다수에겐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 존재인가. 그 ‘부자’가 ‘언니’를 만나 온도가 생겼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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