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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정략에 활용하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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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정략에 활용하는 트럼프

입력
2020.06.03 08:5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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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이틀 종교시설 방문… 보수종교계 정치적 우군 활용

워싱턴 대주교 “카톨릭 시설 터무니 없이 잘못 이용”

세인트존 방문 당시 최루탄 진압에 비난여론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백악관 인근의 세인트폴 2세 국립성지를 방문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백악관 인근의 세인트폴 2세 국립성지를 방문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흑인 사망 사건으로 미 전역이 항의시위로 들끓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틀 연속 종교시설을 방문했다. 주말이면 교회 대신 골프장을 찾으면서도 보수성향 기독교인을 정치적 우군으로 활용해온 그가 이번에도 종교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한 해당 종교계와 정치권에선 ‘사진찍기용 쇼’라는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낮 백악관 인근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성지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 연설 없이 화환이 걸린 교황 동상 앞에서 사진촬영용 포즈를 취한 뒤 묵념하며 10여분 머물다 돌아갔다. 그는 전날에도 대국민 연설 후 경찰을 동원해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몰아낸 뒤 화재 피해를 입은 백악관 맞은편의 세인트존 교회를 방문해 성경을 들고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만 드물게 방문했다. 그의 주말 행선지는 대부분 골프장이었다. 대신 낙태 반대 등을 주장하는 보수성향의 복음주의 종교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들이 선호하는 대법관을 지명하는가 하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외교정책까지 밀어붙였다. 개인적 신앙과 무관하게 그와 복음주의 종교계 간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국제 종교 자유를 증진시키는 용도로 국제개발처 예산 5,000만달러를 배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종교계를 지지기반으로 삼아오긴 했지만 이번 시위 사태에서조차 노골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데 대해선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전날 세인트존 교회를 방문한 과정에 대해 종교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천주교 워싱턴대교구장이자 첫 아프리카계인 윌튼 그레고리 대주교는 이날 성명에서 “가톨릭 시설이 터무니없이 잘못 이용되도록 허용한 건 당혹스럽고 비난받을 만하다”며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평화를 위한 장소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겁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한 곳은 애초 요한 바오로 2세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재정난을 겪은 뒤 2011년 보수성향 평신도 단체의 후원으로 운영돼왔다. 그레고리 대주교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허용한 성지 관리자 측도 겨냥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세인트존 교회를 감독하는 성공회 워싱턴교구의 매리앤 버디 주교도 전날 “우리 교회가 대변하는 모든 것에 반대되는 메시지를 위해 성경과 교회를 허락 없이 배경으로 썼다”고 분개했다.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3일 미사에서 “우리는 어떤 인종주의와 차별에도 눈감을 수 없다”며 미국 내 시위 사태를 처음 언급했다. 다만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동시에 “폭력도 자기파괴적이며 자멸적인 행위”라며 일부 시위대 폭력행위도 규탄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소속의 랠프 노섬 버지니아주(州)지사는 “주방위군을 사진 찍는 데 동원할 수 없다”며 “연방정부의 파견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벤 세스 공화당 상원의원도 “종교를 정치적 도구로 다루는 사진 찍기를 위해 평화적 시위대를 몰아내는 것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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