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한 ‘美 150년 인종차별’ 분노… 트럼프 강경대응이 시위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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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한 ‘美 150년 인종차별’ 분노… 트럼프 강경대응이 시위 부채질

입력
2020.06.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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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유발 경찰 기소 불구 시위 격화, 코로나로 재확인한 불평등 탓 

 코로나 사망률ᆞ실업률 흑인 쏠림… 시위 장기화 5600명 이상 체포 

1일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진행된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중 한 시위 참가자의 발 밑으로 최루탄이 떨어지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진짜 문제는 이 나라에서 계속되는 인종차별이고 이것이 만성적ㆍ고질적ㆍ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 주지사)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위가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작은 무소불위 공권력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흑인에 유독 엄격한 경찰 폭력이 이따금 발생하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확산세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제 시위는 ‘인종차별’이란 미국사회의 오래된 치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150년 넘게 이어진 백인 우월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확인된 구조적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 등이 겹쳐 쌓인 시민의 분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거에 터져 나온 것이다.

미 CNN방송은 1일(현지시간) “수개월의 봉쇄를 마친 미국의 거리가 갑자기 시위대의 함성과 최루탄 연기, 검게 그을린 폐기물로 가득 찼다”며 “시위대는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 치안과 사법, 정치체계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증명하려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 플로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 데릭 쇼빈이 3급 살인, 2급 과실치사로 기소된 이후에도 시위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 일로다.

우선 ‘정의’의 문제다. 폭력적 공권력 집행으로 가해 경찰이 제때 죗값을 치른 사례는 드물었다. 1991년 로드니 킹 폭행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단순 신호위반으로 붙잡힌 킹은 백인 경찰의 무차별 폭행으로 청각을 잃었다. 그럼에도 가해 경찰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폭발,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비화했다. 2014년 천식 환자 에릭 가너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뉴욕 경찰도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5년 뒤에야 파면됐다. CNN은 “미국인들은 이런 부정의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사태는 부정의와 불평등에 관한 오랜 갈등을 세상으로 불러낸 기폭제가 됐다. 흑인과 히스패닉 계열 주민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백인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미국 내 코로나19 집단 발병지역으로 꼽히는 뉴욕시의 경우 히스패닉과 흑인 사망자가 각각 전체의 34, 28%를 차지한 반면, 이들보다 인구가 많은 백인 사망자는 27%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시카고의 흑인 인구는 전체의 30%인데 코로나19 감염자의 52%, 사망자의 72%가 흑인이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이들에게 집중됐다. 코로나19 여파로 4월 미국 실업률은 14.7%까지 폭등했는데, 흑인 실업률이 16.7%로 백인(14.2%)을 크게 웃도는 등 인종별 격차가 컸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체 노동자 중 흑인 비율은 11.9% 정도지만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쉬운 최전선 노동자에선 17%를 차지한다”며 “미국에서 흑인들은 가장 늦게 고용되고, 가장 빨리 해고되며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임금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봉쇄 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으로 좌절한 미국인들이 플로이드의 죽음을 통해 불평등의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워싱턴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를 깜짝 방문한 뒤 다시 도보로 백악관에 복귀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일변도’ 대응은 이미 불이 당겨진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통합의 메시지를 내놓기는커녕, 시위대를 ‘폭도’ ‘테러리스트’ 등으로 몰아 세우며 폭력을 더욱 자극하는 형국이다. 시위에 선을 그으려는 트럼프의 속내는 이날 백악관 연설 직후 인근 세인트 존스 교회를 도보로 깜짝 방문하기 위해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시위대를 밀어내는 장면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그는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엄벌하겠다는 강력 경고도 더했다. 밤에는 워싱턴 차이나타운 상공에서 미군 소속 라코타(UH-72)와 블랙호크(UH-60) 헬기가 저공비행으로 시위대를 위협했다.

시위가 길어지면서 다치거나 체포되는 사람들은 급증하고 있다. 2일 AP통신은 경찰 보도자료 등을 종합해 이날까지 미 전역에서 최소 5,600명이 붙잡혔다고 집계했다. 급기야 목숨을 잃은 시민도 나왔다. NYT는 1일 기준 최소 6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나 이후 시카고(2명)와 버팔로(2명) 등에서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미주리주(州)에서 경찰관 4명이 총상을 입고 이송되는 등 경찰 및 경찰 시설물에 대한 공격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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