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양육비 소송을 하는 부부에게 양육비 사용처를 공개하도록 한 가정법원의 판결은 양육자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대만 여성 A씨가 한국인 남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소송에서,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원심판결 중 양육비 지급 부분을 파기해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 부부는 2016년 7월 혼인신고를 하고 슬하에 미성년 자녀를 뒀지만 성격ㆍ문화 차이, 양육 문제 등으로 다투다 1년여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고 보고 이혼청구를 인용했으며, 재산분할 청구는 일부 인용했지만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제는 양육비에서 불거졌다. 1심은 양육자를 A씨로 지정하고 B씨에게 아이의 성장단계별로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반면 2심은 누가 친권을 행사하는 지와 별개로 양육에 소요되는 비용은 부모의 공동 부담이라며 “각자의 소득 및 재산현황 등에 따라 일정한 액수의 양육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봤다. 또 “이 경우 양육비를 유용하는 사례도 생길 수 있다”며 양육비를 투명하게 관리할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2심 재판부는 △A씨 또는 B씨 명의의 새로운 예금계좌를 개설한 뒤 △양육자로 지정된 A씨는 이 돈이 양육에만 쓰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B씨에게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된 부모 일방은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가정법원은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분담해야 할 적정액의 양육비만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하며 원심 판단 중 양육비 관리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부분을 파기했다. 법원이 양육비의 사용방법 등까지 특정하는 것은 양육자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양육비 사용방법에 관한 구체적 사항에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A씨가 이 사건 예금계좌 거래내역을 정기적으로 B씨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두 사람 사이 분쟁을 예방하기보다 추가 분쟁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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