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걸의 필동멘션] 부자들은 왜 샤넬 백을 줄 서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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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의 필동멘션] 부자들은 왜 샤넬 백을 줄 서서 살까

입력
2020.06.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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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5>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치의 특별함 

명품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에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해가 길어지고 밤이 짧아졌다.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하고, 아드레날린에 절여진 프로 야구의 함성이 옆동네까지 들리고, 휴가 관련 책이 끈 떨어진 진주 목걸이처럼 좌르륵 서점에 진열되는 때가 왔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오늘의 노래, 침체의 사운드 트랙은 콜드 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나 한 때 세계를 지배했지/내 말 한 마디면 바다도 꼼짝 못했어/이젠 아침에 혼자 잠들고/내 소유였던 거리를 청소하는 신세가 되었어

생동감 넘치는 시대든 아니든 남에게 뒤지지 않기란 너무 힘들다. 그러나 뒤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더 힘들다. 우리의 공통점은 도금된 닷컴 시기와 포효하는 부동산 시대를 거치는 동안,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창이 삽시간에 거부(巨富)가 되는 걸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십 대 중반 청년이 넥타이 정리법을 고안한 웹사이트로 수억을 벌었다는 얘기며, 건너건너 아는 이가 별 고민 없이 사둔 아파트가 서너 배 뛰었다는 기사를 읽는 것부터 이미 기분 나쁘다.

공공 재물이란 이렇게 비논리성으로 가득한 것인가. 나보다 못 한 줄 알았던 친구가 부자 되는 걸 보는 감정은 도덕과 싸우게 만든다. 새로운 부자 탄생은 독단적으로가 아니라 나머지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과 같은 비율로 일어나니까. “장난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죽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란 서양 속담은 자동차에나 붙일 스티커지 나를 위한 경구가 아니다. 머리도 나쁘고 재빠르지도 못해 여전히 가난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사를 얼른 닫는 것뿐. 한 마디로, 우리가 잠든 사이 시계 바늘은 돌아갔다.

달걀을 다루듯 매일을 보내는 시절의 SNS용 안부, ‘단톡방’으로 끝낸 동창회, 마스크 낀 회사 정수기 앞에서의 대화는 서로 무사하자는 것뿐인데, 어디서 기묘한 뉴스가 들린다. 잔인하도록 비싼 샤넬 백 가격이 오른다는 귀띔에 날쌘 사람들이 매장 앞에 잔뜩 진치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뛰어갔다는 얘기. (그 중 상당수가 열망에 찬 순진한 고객이 아니라 재판매자라는 건 나중에 들었다). 뭔가 이상한 시트콤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혹시 지금 다른 시대에 와 있는 걸까? 1960년대 산아 제한이나 1970년대 근검 절약의 시대 어디쯤? 벌어진 눈에 급한 질문이 남겨졌다.

그동안 침울한 시기와 희망의 부재 사이에서 힘들게 평정심을 찾고 있었다. 최소한 본성을 다치는 뉴스에 마음 상하기 전까지는. 취향은 분명 어느 정도 세계화 되었다. 어떤 시각적 틀로 보느냐에 따라 기준이 다를 뿐. 그런데 그 광경은 무엇이었을까? 소비의 빙하기에 새로운 우아함이 봉기한 걸까? 의욕적인 구매자들에게 샤넬 계산대는 요동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제일선이었을까? 혹은 포스트 소비 지상주의의 시작? 위축된 노동이 부른 정신적 무질서? 억눌린 날들의 규율이 이렇게 퇴폐를 정의하는 걸까? 부르주아 개념이 낡아 뵈는 지금, 가공되지 않은 부의 얼굴은 수고하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세태의 풍자 같았다. 확실히 이 시대 사조에 접근하는 것은 마트에서 카트를 끌 듯 쉬운 일이 아니다.

속으로는 저러다 막걸리라도 엎지르면 그리스 비극이 생기지 싶으면서도,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믿음이 절반쯤 흔들린다. 안 그래도 전염병 따라 우울증도 몇 배 늘었는데, 각자 떠안은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 긴장으로 인한 심장 질환, 심장 질환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 면역력 약화에 따른 불안이 돌고 돈다. 아무리 주위를 봐도 삶에 만족한다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충분함’이란 항상 이미 가진 것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의미하니까.

우리가 삶의 비용을 낮추느라 고군분투하는데 불황일수록 부자들이 더 부유해진다는 통계는 새삼 비위 상한다.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체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계급 투쟁은 세상에서 가장 가망 없는 일이지만, 절망적인 소식이 제멋대로 우리를 낙담시키면 힘없이 침대에 누워 종일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우리는 두 카테고리 중 하나를 택함으로써 세상을 나눈다. 어떤 이는 경탄할만한 도덕률을 앞세워 모종의 지위를 선점한다. 그러나 부자들은 그런 이즘에는 관심이 없다. 애면글면 하는 우리에게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소형SUV를 살지 국산 중형 세단을 살지 망설이는 사이에 BMW를 탄 부자들은 진작에 벤틀리로 갈아탔다. 우리는 20년 쓴 국산 꽃무늬 냉장고를 바꿀까 말까 오 년 전부터 고민하는데 부자들은 이미 십 년 전부터 3,000만원이 넘는 미국 냉장고를 썼다. 이럴 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고흐가 생전에 단 한 작품만 팔았다는 일화도 위로가 안 된다. 사실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누가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성공을 못마땅해 한다고? 문제는 그 마을에서 나만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단 한 명의 거주자라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7~17% 가격 인상이 예정된 전날인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직원이 취재진의 촬영을 몸으로 막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그러나 그 동안 내가 부자들한테서 발견한 것은 따분함이었다. 자기가 가진 부를 조용히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따분함, 며칠 전 싹 다 바꾼 부엌 가구 제조사에 대한 일반 상식만 자랑하는 따분함. 오직 통념을 뛰어 넘는 사치만이 그들을 충족시켰다. 김수현의 1970년대 소설 ‘상처’에는 비누가 유일한 사치인 여성이 등장한다. 비용으로 품위를 환산하는 이들은 비누가 사치라는 게 유머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피상적이든 아니든 어떻게 향유하느냐의 문제는 사치에 대한 심리학적 백신이 될 것이다.

A에겐 캐시미어 양말만 한 사치가 없다. 런던 유학 시절, 돈이 없을 때도 한 켤레에 이 만 원짜리 양말을 샀다. 자칭 양말 성애자인 A에겐 양복점에서 맞춰 입는 슈트조차 그 양말만 못한 것.

B는 공동구매로 산 무쇠 프라이팬을 매일 품에 안고 잘 기세다. 기름도 먹여야 하고 다루기도 쉽지 않지만, 미슐랭부터 떡볶이까지 공깃돌 다루듯 요리할 수 있어서. 음식이 목숨인 사람에게 내구성 강한 프라이팬만 한 사치가 또 무엇인가.

C의 옷차림은 너무 검박하지만 토분을 살 때는 터무니없이 관대해진다. 특히 희귀한 소철이나 천천히 자라는 야자를 좋아한다. C에게 식물은 봄 코트이자 가을 핸드백. 스스로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가끔 식물이 죽으면, 그 ‘코트’를 버렸다 생각하고 다른 ‘코트’를 산다. 그런 날 저녁에는 삼각 김밥을 먹는다 해도.

몇 해 전 시각장애자가 된 D에게 올리버 피플스 선글라스는 남자 친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남자 친구는 늘 불평이 많지만, 선글라스는 말 없이 세상으로부터 쉬게 해주니까.

E는 왁자한 업무 중에라도 한 달에 하루 휴가를 내 사간동 화랑 거리에 간다. 부산한 마음을 잠재우는 미술의 호젓함이야 말로 직장인에겐 엄두도 못 낼 사치라서.

고양이는 F의 극단적인 사치이다 5년 전 여름, 중계동 뒷골목에서 발견한 고양이는 양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채 집에 데리고 온 그날로 가족이 되었다. 웬만하면 같이 다니는데, 곧 긴 여행에도 데려갈 생각이다. 며칠 전엔 없는 살림에 초호화 캐리어 세트도 샀다. F의 고민은 하나. 이러다 버릇 없어지는 게 아닐까.

G에겐 밤 11시에 듣는 장미리의 노래가 절정의 만족을 준다. 70년대 가수의 마력적인 노래 중 ‘첫경험’을 제일 좋아한다. 브라스 밴드가 장중하게 펼쳐질 때 압도적인 비브라토가 “아, 왜 몰랐을까, 사랑의 첫 경험”이라는 가사에 얹히면 그 옛날 비 오는 거리가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다.

H는 쇼핑 중독이 아닌데도 늘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산다. 특히 시트만큼은 호텔급으로 사곤 늘 세탁소에 맡긴다. 자기에겐 숙면만큼 중요한 행위가 없다면서 양복 안감처럼 잘 안 보이는 곳에 신경 쓰는 사람이 제일 멋지다고 우긴다.

I는 옛날 사진만 모은다. 사진은 그림보다 투자의 잠재력이 적다지만 초창기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회화적인 아우라에 매료되고 말았다. 게다가 희귀함은 I의 종교이기도 하고.

J는 헤어진 연인이 선물한 코니츠 머그잔으로만 커피를 마신다. 화려한 바로크 로코코 풍 컵도 많지만 둔중한 코니츠 잔에는 농장의 커피나무로 시작해 집 테이블까지 온 커피 열매의 긴 여정이 그대로 담긴 것 같다. 사랑은 가도 커피 잔은 남는 것.

K에게는 핸드메이드 서핑 보드 이상의 사치품이 없다. 삽 십대 초반 남아프리카 케이프 타운에서 샀는데, 좋아하는 운동화 색깔과 똑같아서 더 애지중지한다.

L의 사치는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는 것. 질펀하게 서로 뭉개는 것이 우정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겐 뭔가 박정해 봬도, 세상에 우정을 지키려는 자존심만큼 귀한 사치가 또 무엇일까.

M은 농장주인 친구가 최상급 환경에서 방목해 생산한 무항생제 달걀만 먹는다. 가격이 좀 세긴 해도 자연에 보여주는 시민으로서의 매너라고 여기기 때문에.

하루치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N은, 어느 하루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만이 유일한 사치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희대의 부호가 된 기분도 들고.

우리는 다 근시안 물고기 같아서 어항 속에 산다는 게 얼마나 제한된 삶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두운 구름이 한 가닥 희망을 숨기듯 이렇게 조촐한 사치의 형태는 힘든 시기에 찾은 최소한의 유예 같다. 그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치의 특별함인 것이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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