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고향 전남 벌교로 도망치듯 스며든다. 그럴 만도 하다. 사법시험 폐지로 이제 더 이상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사시준비생이다. 출세를 위해 떠났다가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간 사내는 낡은 단관극장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퇴락한 고향처럼 어머니는 중병에 걸려있다. 반기는 이 딱히 없는 귀향, 사내는 가족, 고향 사람들과 교유하며 도시에서 입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한다. 지난달 29일 극장과 주문형비디오(VOD)로 동시 개봉한 영화 ‘국도극장’(감독 전지희)의 이야기 줄기다.
패잔병처럼 고향에 돌아온 사내 기태는 배우 이동휘가 연기했다. 코미디와 범죄극 등을 오가며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그는 ‘국도극장’에선 무기력한 젊은 세대를 표현한다. 영화 개봉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휘는 “혼자 있어도 울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을 때 마침 보게 된 시나리오라 출연하게 된 영화”라고 말했다.
벌교는 전라도 사투리의 농도가 진한 지역. 서울내기인 이동휘는 사투리부터 배워야 했다. 연기호흡을 맞춘 선배 배우 이한위의 도움을 받았다. 광주가 고향인 이한위는 “사투리를 배우기에 완벽한 선생님”이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아예 모르는 사람, 서울에 살면서 사투리가 조금은 벗겨진 사람 등 출연 배우들의 대사를 수준별로 다 검수해준” 이도 이한위였다. 이동휘는 “제가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잘해냈다고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대사 90%가 중국어인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래도 우리 말을 할 때가 편하고 행복했구나 생각했다”며 웃음지었다.
영화 속에서 극적인 갈등은 없다. 서울까지 가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기태와 가족은 거리감을 느끼지만, 대립하지 않는다. 남자 동창이 기태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나 감정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기태는 극장 영사기사 오씨(이한위), 편찮은 어머니(신신애), 가수를 꿈꾸는 고향친구 영은(이상희) 사이를 오가며 서울에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조금씩 편다. “(코로나19로 위험한) 이럴 때 집에서 편하게 이런 잔잔한 영화를 보실 수 있게 돼 좋은 듯해요.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나긋나긋 전해주며 좋은 정서적 경험을 제공하리라 기대합니다.”
이동휘도 기태처럼 위축돼 산 시절이 있었다. 연기를 전공하겠다며 대입 재수를 할 때였다. 그는 “부모님 반대가 강해서 연기학원을 몰래 다녔다”며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 부모님께 (진로를) 제대로 말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시고 응원해주신다”고 했다.
지난해 1,626만명이 본 ‘극한직업’에서 주연을 한 이동휘는 조금은 엉뚱하게도 단편영화 출연을 즐기고 있다. 최근엔 동료배우 이기혁이 연출한 ‘출국심사’와 ‘메소드 연기’에 잇따라 출연했다. 그는 “많은 선배들이 영화 사이사이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할 때 저는 단편영화 작업을 한다”며 “단편영화에 출연하다 보면 처음 연기할 때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인터뷰를 보신 단편영화 감독이 있으시면 연락 주셨으면 한다”며 웃음짓기도 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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