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 절차의 위법 여부를 가리는 소송이 항소심에서 각하됐다. 지난해 말 이미 영구정지가 결정됐기 때문에 소송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린 민감한 사안에 대해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판결 없이 소송을 종료한 법원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29일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 고의영)는 월성 1호기 인근 주민 2,167명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각하로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 절차를 끝내는 것을 뜻한다.
원고 측은 2015년 2월 원안위가 한국수력원자력에게 월성 1호기를 10년 더 운전해도 된다(수명연장)고 허가한 과정이 위법하기 때문에 수명연장은 무효나 취소가 돼야 한다며 이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2월 1심은 수명연장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고, 원안위는 항소했다.
당초 지난해 12월 20일이었던 항소심 선고 기일은 나흘 뒤로 예정돼 있던 원안위의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심의를 앞두고 돌연 올해 2월 14일로 변경됐다. 한수원에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수명연장을 허가 받은 월성 1호기에 대해 경제성이 없다고 입장을 바꿔 2019년 원안위에 다시 영구정지 허가를 신청했다. 원안위는 지난 12월 24일 이를 승인했고, 법원은 선고를 재차 미루고 3월 변론을 재개했다. 원고는 원안위의 과거 위법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원안위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가 결정됐다는 이유로 각하를 요청했다. 이에 원자력계와 법조계 한편에선 “법원이 결국 정부의 영구정지 결정을 기다렸다가 소송을 각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위법성을 둘러싼 갈등은 법원의 각하로 흐지부지 무마됐지만 또 다른 갈등의 여지는 남아 있다. 국회는 지난해 9월 감사원에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과소평가했는지 감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감사원은 법적 시한(12월 말)을 넘기면서까지 결과를 미루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경제성 평가가 왜곡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온다면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찬반 논란은 재점화될 수 있다.
월성 1호기가 친원전과 반원전 갈등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동안 누구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법원과 감사원이 뚜렷한 이유 없이 판단을 계속 미루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키웠다는 지적 또한 비등하다. 원자력 분야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 받을 수 있다”며 꼬집었다.
1982년 11월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운영허가가 끝났다가 수명연장 승인을 받아 2015년 6월 발전을 재개했지만, 한수원이 조기 폐쇄를 결정해 2018년 6월 정지됐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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