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해 치료의 대상으로 보더라도, 기대했던 게임중독 감소 효과는커녕 경제적ㆍ사회적 악영향만 커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만장일치로 게임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지 1년 만에 의료계와 게임업계의 갈등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28일 토론회를 열고 ‘게임이용 장애 질병분류의 경제효과 분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교 교수는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취급하게 되면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과몰입군은 게임 소비를 줄이지 않음으로써 원하던 중독 치료 효과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20~59세 성인남녀 503명으로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 응답자들은 게임이용이 장애로 치부된다면 한 달 평균 게임비가 28.45%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적용해 2017년 게임산업 매출 13조1,423조 중 28.45%가 줄어든다고 가정할 때, 이에 따라 줄어드는 총 생산 효과는 5조2,52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층에 집중된 취업 기회도 3만4,007명이나 줄어들 것으로 산출됐다. 유 교수는 “다른 방식의 시뮬레이션을 적용하면 생산 및 고용 감소 규모가 훨씬 크게 나온다”며 “예상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셧다운제의 사례를 들어 질병코드화도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2011년부터 시행된 셧다운제는 2014년까지 1조1,600억원 규모의 시장 위축을 가져왔다. 이는 2014년 총 시장 규모의 약 10.7%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 기대됐던 청소년 온라인 게임 중독 예방 효과는 미미했다. 총 게임 가용시간 대비 실제 게임 이용시간의 비중은 오히려 제도 전보다 늘어난 것이다. 유 교수는 “게임의 질병코드화는 셧다운제에 비해 시장에 4배 이상의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며 “2025년이면 3만~5만명이 고용 기회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인기협은 정책이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집단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유 교수는 “일반적으로 자기통제력이 높은 그룹의 경우 게임 중독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기통제력이 낮은 그룹의 게임 수요를 줄여야 효과적인 정책이 될 텐데,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분석 결과 게임의 질병코드화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중독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 게임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게임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교한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전체 게임 이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질병코드화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게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중독 수준이 높은 진짜 문제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후 인터넷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은 “섣부른 규제가 경제적 역효과는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요한 산업군으로 떠오른 게임산업에 후퇴 신호가 될까 걱정된다”며 “인터넷 중독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독도 질병으로 취급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붙인 국제질병분류(ICD)-11은 194개 WHO 회원국에서 2022년부터 적용된다. 다만 질병 코드는 권고사항이라 나라별로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한국질병분류코드(KCD)는 통계청이 담당하며, 5년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가 협의해 정한다. 다음 KCD 개정은 2025년이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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