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계장’ 경비원 10명 중 9명은 근로기준법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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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임계장’ 경비원 10명 중 9명은 근로기준법 밖에 있었다

입력
2020.05.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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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상 휴게ㆍ휴식 규정, 적용제외 승인제

형식적 서면심사에 감시ㆍ단속 근로자 10명중 9명 ‘과로’ 내몰려

근로기준법상 감시ㆍ단속적 노동자에 해당하는 경비원들 상당수는 야간휴게시간에도 1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쪽잠을 자며 대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2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A(60)씨의 야간 휴게시간은 6시간이다. 하지만 그의 실제 수면 시간은 4시간도 채 안 된다. 밤늦게 도움을 청하는 주민을 돕거나 취객을 상대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붙이려 하면 ‘새벽배송’ 택배가 그를 깨운다. 휴게시간에도 A씨의 노동은 이어지지만, 연장근로수당을 요구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는 정부가 승인한 ‘근로기준법 제외자’ 이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근기법)은 경비원, 수위, 운전기사 등 ‘감시ㆍ단속적 근로자’에 휴일ㆍ휴게ㆍ연장근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적용제외 승인’ 제도를 두고 있다. 이들의 업무시간 중 대기시간이 많아 다른 근로자와 똑같은 근로시간 기준을 적용하면 사용자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승인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면서 제도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경비원의 장시간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전국 감시ㆍ단속적 근로자 19만4,671명 중 17만9,638명(92.2%)이 근기법 적용 제외 승인을 받았다. 매년 10명중 9명이 근기법 밖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서면심사’가 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일선 노동관서는 감시ㆍ단속적 노동자의 업무환경이 △1일 근로시간 12시간 이내 또는 휴게시간 8시간이 확보된 24시간 교대제인지 △휴게시설을 확보했는지 △업무의 심신피로도가 적고 대기시간을 확보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근기법 제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근로감독관 인력 부족을 이유로 대부분 서류검토만으로 승인을 하는 실정이다. 한 지방노동청 관계자는 “현장 실사를 가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대상자를 만나 확인하기 어려운 터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서류로 대신한다”고 털어놨다. 일단 한번 적용제외 승인이 되면 사용자는 지휘ㆍ감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데다 그 효력도 영속적이라 근로자의 인권 침해 소지가 높지만, 형식적 절차만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제도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기법은 감시ㆍ단속적 근로자가 주로 근무지에 앉아 감시를 하기 때문에 ‘정신ㆍ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 또는 ‘휴게ㆍ대기시간이 긴 업무’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경비원의 실제 업무 스케줄은 훨씬 빽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비원들은 주 업무인 ‘방범’외에도 분리수거ㆍ청소ㆍ조경 등 5~6가지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다. 지난달 사망한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의 고 최희석 경비원도 주차 업무를 하다 주민의 폭력을 겪었다. 경비원들의 24시간(격일) 근무 중 휴게시간은 6~8시간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여러 업무를 해야 하는 탓에 75.9%는 ‘휴게시간에도 경비실에서 대기한다’고 답한다.

이에 20대 국회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승인 기준ㆍ절차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서면합의를 받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한차례 논의도 없이 폐기를 눈 앞에 뒀다.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은 “입주민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경비원들 입장에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안 준다’고 해도 반대할 수 없어 합의는 무용지물”이라며 “감시ㆍ단속적 근로를 쉬운 일자리, 시혜적 일자리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의 실제 노동강도에 맞는 근로시간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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