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웨이(중국 통신장비업체) 제재 검토와 중국의 홍콩 보안법 입법 시도로 불붙은 미ㆍ중 갈등이 또 다시 ‘글로벌 환율전쟁’의 먹구름을 불러 모으고 있다. 두 강대국의 불화가 금융시장에서 위안화 가치 하락을 부르는 가운데,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의도적인 위안화 절하를 개시했다는 해석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원화가치와 한국의 무역환경에도 심각한 위험 요소가 급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위안화 환율, 2008년 이후 최고치
26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역내 위안ㆍ달러 기준환율을 전날보다 0.12% 높인 달러당 7.1293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 0.38% 급등에 이은 연이틀 상승으로, 위안화 환율은 2008년 2월 27일 이후 1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위안화 가치 절하) 수준이 됐다.
고정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인민은행은 중국 본토에서 외환 거래를 할 때 그날 적용할 환율을 고시하고 상하 2% 이내에서만 변동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 기준환율이 금융위기 이래 최고점까지 오른 셈이다. 민간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반영하는 홍콩 위안화 시장의 역외환율도 달러당 7.14위안 수준까지 높아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위안화 환율 급등을 미중 갈등에 따른 불안감의 여파로 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로빈 브룩스 수석경제학자는“역대 위안화 절하는 달러 강세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이거나 중국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신호였는데, 지금은 달러 강세 요인이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그간 막아왔던 위안화 가치 절하를 사실상 용인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에서 막 벗어나는 시점에 미국이 압박 수위를 높이자, 아예 작정하고 역공에 나선다는 것이다. 실제 인민은행은 지난 15일 “중국 경제가 전대미문의 상황에 처했다”며 그간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통화완화 정책에 적극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미중 발 ‘환율전쟁’ 재현되나
위안화 절하는 미국에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압박 명분이 ‘지나친 대중 무역적자 해소’임을 감안하면, 중국의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위안화 절하는 이에 대한 정면도전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세 분쟁이 재차 불거진다면,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더 낮춰 수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무역 분쟁이 신흥국 전반의 통화가치를 흔드는 환율 전쟁을 불렀던 지난해 8월의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높다. 당시 중국이 포치(破七ㆍ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는 것)를 사실상 용인하자 미국 정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존 오더스 칼럼니스트는 “홍콩을 둘러싼 긴장보다 위안화 가치가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한층 분명한 ‘미중 냉전’의 신호”라고 논평했다.
비록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경제 재개 기대감에 전날보다 하락했지만, 위안화 절하는 한국과 중국 경제의 높은 연관관계 때문에 원화 가치에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은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해외 투자금이 빠져 나갈 경우, 국내 금융시장 불안을 높일 여지가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6년 이후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어 위안화 가치 절하로 인한 환율 압박이 한국에도 적용될 위험이 있다”고 예상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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