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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음악교육, 접속 너머의 연결

입력
2020.05.27 04:30
수정
2020.05.27 17: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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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교수와 학생이 투명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피아노 실기 대면수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대 음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교수와 학생이 투명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피아노 실기 대면수업을 하고 있다. 뉴스1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의 이 문장이 새로운 기술시대를 확신한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디지털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켰지만 유독 공연장과 강의실만큼은 이 변화를 애써 외면했었다. 청중과 학생은 21세기 디지털 세대로 첨단을 달리는데도, 음악가와 교육자는 20세기의 양식에 매달려, 19세기와 다름없는 근대적 공연장과 강의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19는 이처럼 보수적인 음악계에 격변을 가져왔고 공연장과 강의실은 온라인의 공간으로 등 떠밀려 이동하고 있다.

온라인 원격강의는 실기수업에 변화를 가져왔다. 교강사와 학생의 1대1 도제식으로 진행되던 레슨을 단순히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촬영과 녹음 등의 기술적 세팅을 차차 갖춰가고 있지만 오프라인 레슨을 그저 온라인으로 ‘재연’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음향을 뒷받침할 기술적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음악적 깊이에 주력하기 보다는 최대한 실수 없이 깨끗이 연주하는데 몰두하고 시각적으로 과장된 제스처도 난무한다.

여럿이 협업을 이루는 앙상블 즉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합창 등의 강의는 기술적 구현이 더더욱 요원해 보인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은 단선적 연결은 가능해도 다수를 대상으로 한 입체적 연대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소리를 경청하고 즉흥적으로 공명하며 동시에 조응해야 하는 앙상블 본연의 미덕에는 현재의 기술력은 결핍 일색이다.

요 근래 음악계에선 뿔뿔이 격리된 연주자들을 랜선으로 연대시키는 ‘모자이크 앙상블’이 유행처럼 퍼졌다. 각자의 집에서 캐주얼한 평상복을 입고 자신의 연주모습을 촬영하면 편집 기술자가 이 영상들을 하나로 합성하는 식이다. 누군가는 21세기적 앙상블의 구현이라 환호하기도 하지만 연주자들 사이 가장 중요한 음악적 지침은 메트로놈 템포의 준수가 유일하다. 대신 창문을 등지는 역광을 피하고 세로모드보다는 가로모드로 촬영해야 할 부수적 지침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다른 사람의 연주에 공명하고 즉흥적으로 조응하는 앙상블의 미덕이 사후편집이나 합성의 편의성보다 한참 밀려나는 것이다.

이렇듯 음악교육현장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 원격실기 강습은 오프라인 레슨의 재연에 급급하고, 앙상블의 입체적 연대는 단선적 연결에 제한되어 있으며, 공연예술 특유의 현장감과 즉흥성은 인위적인 편집으로 왜곡되고 있다. 디지털 가상과 실제 세상이 충돌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은 인위적으로 왜곡되기 일쑤다. 사람들은 실제 음악보다 조작된 음향에 감동하고 음악적 맥락과 무관한 카메라의 현란한 기교에 매료되며 기승전결의 유장한 서사를 생략한 채 클라이맥스만 과장한 악상에 환호한다. 퇴화해버린 감각은 더욱 강렬한 말초적 자극을 열망할지 모른다.

코로나는 공연예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며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급변한다 해도 예술가는 그 격렬한 파고 속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과 지켜야 할 것을 꾸준히 각성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맹목적으로 뒤따라 쫓을지, 아니면 파수꾼처럼 예술의 오래된 방식을 의연히 지켜야 할지 올곧이 헤아리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도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할지 모른다. 오늘의 우리뿐만 아니라 내일의 그들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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