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이다. 여기서 강남(江南)은 보통 양쯔강 이남으로, 따뜻한 남쪽나라 먼 곳 어디쯤이다. 제비는 흥부에게 줄 박씨만 물고 왔을까?
먼저 ‘강남이’에서 온 강냉이가 있다. 강남에서 건너온 식물이란 뜻이다. 수수처럼 보이지만 구슬[玉]이 가지런히 박힌 모양새라고 옥수수로도 부른다. 강냉이는 출신을 드러내고, 옥수수는 모양을 그려준다. 봄이면 초등학생의 자연 관찰 실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낭콩도 강남에서 왔다. 오래 전에 한국에 정착했지만,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비표준어인 강남콩으로 불렀다. 당나귀와 당면은 당나라를 표시하는 ‘당(唐)’을 달고 있고, 호떡과 호주머니는 ‘호(胡)’로 청나라를 표시한다. 이처럼 말은 수백 년을 넘어도 연원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어릴 적 음악 시간에는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린 조각구름’을 노래했다.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라는 미류(美柳)나무가 그 말의 시작이다. 실제로 미루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란다. 양옥, 양복, 양주, 양궁, 양말처럼 서양에서 온 대부분은 ‘양(洋)’을 붙이고 있는 것과 달리, 미류는 미국이 원산지임을 콕 집어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말이라도 경로에 따라 달라진다. 씹는 껌(gum)은 영어에서 왔으나 신발에 붙이는 고무(gum)는 원산지에서 일본을 거쳐 와, 한국어에서 두 말은 의미 뿐더러 형태마저 다르다. 일본어 가죽 구두(皮靴, くつ)는 구두로, 일본어 나베(鍋, なべ)는 냄비로 한국에 차용되었다.
말은 천 년 전의 수출과 수입 이력도 남겨 두는 바코드다. 한류가 뜨거운 21세기에 한국말은 어떤 정보를 담은 채 이웃 나라들에 남겨질까? 우선 주인이 바르게 쓰면서, 좋은 정보를 담아 수출되길 기다릴 일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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