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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1000억 벌금… 10년 전 기업은행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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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1000억 벌금… 10년 전 기업은행에 무슨 일이

입력
2020.05.26 01:00
수정
2020.05.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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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이 10년 전 발생한 사건으로 미국 사법당국에 뒤늦게 1,000억원대 벌금을 물게 됐다. 기업은행은 “억울한 면이 있지만, 여러 현실을 감안해 벌금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1,000억원의 손실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책임을 묻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기업은행은 한국 무역업체의 이란 제재 위반 사건과 관련해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에 8,600만 달러(약 1,050억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

이는 10년 전인 2011년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 무역업체 A사 대표 정모씨는 이란과 제3국간 중계무역을 하면서 위장 거래를 통해 2011년 2월부터 7월까지 기업은행의 원화 결제계좌를 이용해 수출대금을 받고, 미 달러화 등을 3국으로 송금했다.

한국 검찰은 A사가 허위 거래를 통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1조원 가량을 빼내 해외로 분산 송금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고, 정씨는 2013년 국내에서 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은 A사의 위장거래를 적시에 파악하지 못해 송금 중개 과정에서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2014년부터 기업은행을 조사해 온 미국 검찰은, 은행 측이 '이상 거래 적발을 위해 자금세탁 방지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한다'는 준법 감시인의 지속적인 건의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고 판단했다.

기업은행 뉴욕지점이 A사의 위장거래 사실을 적발한 것은 사건이 처음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난 2011년 7월인데, 뉴욕지점에 소속된 1명의 준법 감시인이 2010년 초부터 내부제안서와 은행 본사에 보낸 메모 등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세탁방지 프로그램 미비와 인력 부족을 지적했지만 조속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은행과 미국 뉴욕 남부지검 간 합의서에는 "뉴욕 지점의 적절하지 않은 자본세탁방지 프로그램 때문에 미국의 대(對) 이란 경제 제재를 위반한 일련의 거래를 적시에 적발하지 못했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 검찰은 기업은행이 벌금에 합의한 만큼 기소를 2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 개선을 위해서는 계약을 체결하고 본점에 승인을 받거나 컨설팅사의 분석을 받은 뒤 이를 검증하는 등 일련의 절차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며 "지속적으로 개선해 현재는 효과적인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1명이던 준법 감시인은 현재 10명까지 늘어난 상태다. 이 관계자는 "미 당국도 뉴욕지점의 해당 프로그램이 2019년 현재 적절한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나름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벌금을 내는 게 “억울한 면도 있다”는 게 기업은행 측의 입장이다. 다만 미 당국에 끝까지 맞설 경우, 기소 이후 장기간, 거액의 소송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데다 현지 영업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 부담이 큰 만큼 ‘전략적으로’ 벌금을 택하는 게 낫다고 은행 측은 판단했다. 또 비슷한 사안으로 수조원대 벌금을 냈던 유럽계 대형은행과 비교하면 타격을 최소화한 편이라는 평가도 은행 내부에서는 나온다.

하지만 국책은행이 1,000억원대 자금을 벌금으로 날리는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실제 이 사건과 관련해 기업은행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없다.

기업은행 측은 "검찰 조사에서도 은행 직원이 공모하거나 범행을 묵인한 과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합의금은 2019년 말 재무상태표에 이미 충당금으로 반영돼 있어 향후 추가적 재무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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