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이야기가)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겪을 수 있을 일이라서 비혼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극 중 지선우(김희애)가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모든 악행을 겪었는데도 그를 애잔하게 바라보는데 그게 너무 공감이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감정은 정말 힘들 것 같아서 결혼은 못할 거 같아요.(웃음)”
우스갯소리로 ‘본격 비혼 장려 드라마’라고 불린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녀 연기를 한 탓일까. 배우 한소희(26)는 “언젠가 가정을 이루겠지만”이라면서도 “(지금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와 불륜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되는 부잣집 외동딸 여다경 역을 맡았다.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연애, 결혼 생활을 하는 다경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줘야 하기도 하지만, 16부작 내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맞서야 할 상대 배우는 무려 김희애이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신인 같지 않다’는 호평을 받으면 시청자 마음을 움직였다. “처음엔 여다경이 욕을 많이 먹을 거라 예상했는데 꼭 그렇진 않더라고요. 여다경이 예쁘다고 말해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죠.”
사실 ‘금수저’에 뛰어난 미모까지 갖춘 여다경이 중년의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시청자에겐 일종의 미스터리다. 한소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다경을 이해하려 많이 노력했다”며 “좋은 집안에서 자라 꿈도 미래도, 절박함도 없이 살아오던 인물이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성공을 이뤄낸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한소희에겐 태오의 그림자도 있다. 그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고3 때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여다경과 달리 한번도 금수저였던 적이 없었다”는 그는 월세, 공과금,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프집 서빙부터 광고 모델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을 키웠다.
2017년 SBS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 이듬해 MBC ‘돈꽃’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세 편의 드라마에 더 출연한 뒤 ‘부부의 세계’로 꽃을 피웠다. 공교롭게도 여섯 편 중 세 편에서 불륜녀를 연기했다. 그는 “캐스팅의 첫째는 이미지일 텐데 ‘내가 사연 많은 사람처럼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다음에는 평범하게 자라 평범하게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부부의 세계’에서 얻은 인기에도 한소희 스스로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1%도 만족하지 못하겠단다. “이번 작품은, 대단한 선배들 사이에서 피해를 끼치거나 누가 돼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을 했고 그것만이 목표였어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 단 1%도 만족을 못하겠어요. 아쉬운 마음이 커서 작품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미련이 남나 봐요.”
한소희는 김희애나 박해준이란 배우가 한가지 감정을 다섯 개의 결로 표현해낸다면, 자기는 겨우 두 개 밖에 안된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선배님들 연기를 보면 ‘왜 난 저렇게 못할까’ 하면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게 제 원동력이 돼요. 자신을 채찍질하며 성장하는 타입이어서인지 그런 박탈감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관심이 불편할 법도 했다. ‘부부의 세계’가 인기를 끌면서 예전 광고 모델 당시 찍었던 흡연, 타투 사진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한소희는 쿨했다. 그는 “그때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라며 “그때가 나빴다거나 틀렸다고 할 수 없듯 지금도 옳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저 웃어 넘겼다.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선 “부담과 행복한 마음이 공존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부부의 세계’를 “배우 한소희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 정의했다. “상상도 못했던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준 작품이죠. 그래서 부담도 되고 걱정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오만 방자한 생각을 하지 않는 배우, 여러분이 주신 사랑에 부끄럽지 않게 천천히, 잘, 튼튼히 성장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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