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의 규제 대상
“일반 공개된 정보”로 제한
텔레그램 비밀방 규제 못 해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도
품질 유지→안정성 확보 의무로
망 사용료 요구하기엔 모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기통신사업법ㆍ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20일 최종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른바 ‘n번방 방지법’과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 등을 포함한 이 개정안은 그 동안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선 뜨거운 감자로 부각됐다. 국내외 업체 사이의 역차별과 개인정보침해 부작용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이 법안은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했지만 실효성 문제 등으로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5일 ICT 업계에 따르면 n번방 방지법과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의 발단이 된 텔레그램, 넷플릭스 등 해외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기엔 법안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국의 집행력을 확보하기 힘든 한계가 있고 해외 CP에 부과하는 의무 역시 모호하다는 게 주된 요지다.
◇“규제 범위도, 실효성도 미흡”
우선 CP에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 책임을 부과하는 n번방 방지법 조항은 규제 대상을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로 제한했다. 블로그, 게시판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디지털 성범죄물이 유통되는 걸 방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작 n번방 사태가 벌어진 텔레그램의 비밀대화방은 비껴나 있는 셈이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연결되는 인터넷주소(URL)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유되는 경우 규제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텔레그램처럼 서버 자체가 국외에 있는 해외 CP는 규제를 위반하더라도 당국의 집행력이 미치지 않는다. 정부는 역외규정(해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 법 적용) 등으로 보완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외국 기업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국내 기업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2011년 구글, 애플의 한국 가입자 위치정보 불법 수집 논란이 일었을 때 방송통신위원회 조사관이 이들 업체의 서버가 있는 미국까지 가 협조를 요청했는데, 그마저도 일부 데이터만 받은 것으로 안다”며 “서버가 국내를 벗어나면 조사권한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망 사용료 논란, 다시 제자리
통신사들이 주축인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은 넷플릭스법에 기대가 컸다. 법이 통과되면 해외 CP도 망 품질 유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할 의무가 생기고 망 사용료 청구에 대한 명분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막대한 접속량(트래픽)을 감당하는 기술적 조치로 망 증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증설 비용 분담을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최종 개정안 제정 과정에서 ‘CP에 과도한 의무가 될 수 있다’ 등의 의견이 반영된 가운데 ‘품질’을 유지할 의무가 ‘안정성 확보’ 의무로 수정됐다. 하지만 통신사 입장에선 안정성 확보만을 근거로 망 대가를 요구하기엔 다소 모호하단 주장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SK브로드밴드와 대립할 때부터 ‘오픈커넥트’라는 자사 정책을 강조해 왔다. 한국 이용자들이 자주 보는 콘텐츠를 국내 캐시서버에 미리 저장해 두는 정책으로 트래픽을 최대 95%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SK브로드밴드에선 넷플릭스가 초고화질(UHD) 영상까지 제공해 캐시서버만으론 품질이 확보되기 어렵다며 망 자체에 대한 공동 관리 의무가 있다고 맞섰다.
ISP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SK브로드밴드는 안정성 확보 수단이 망 사용료 분담이라고,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로 충분하다면서 팽팽하게 대립할 것”이라며 “시행령에서 다소 모호한 내용들을 어떻게 구체화하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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