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골절인데 타박상 진단”… 농어촌에 전문의가 없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고관절 골절인데 타박상 진단”… 농어촌에 전문의가 없다

입력
2020.05.26 04:30
0 0

 의대 증원? 코로나가 묻다 <하>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 서울 강남구 30명 vs 경북 영양군 108명 

충북지역 시민사회 단체 등으로 구성된 ‘충북북부지역 공공의료강화 대책위원회’가 지난 3월 17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강 지표가 전국 최하위권인 충북 북부지역의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공공보건의료 시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청주=한덕동 기자

충북 청주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이모(55)씨는 요즘 고향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세가 생겼다. 올해 1월 어머니(84)의 낙상 사고 이후 생긴 트라우마 같다고 한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고향집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는 지난 설 명절 직전 마을회관을 다녀오다 언 땅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는 즉시 주민들에 의해 읍내 개인 의원으로 이송됐다. 의원에서는 간단한 타박상이라며 까진 상처만 처치한 뒤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출장 차 타지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이씨는 사흘 뒤 고향집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치료를 잘 받았다는 어머니가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1시간 거리의 청주시내 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긴 그는 억장이 무너졌다. 골반뼈에 금이 가고 고관절이 골절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어머니는 응급 수술을 받은 뒤 다른 병원을 거쳐 3개월 동안 입원 신세를 져야 했다. 지금은 고향 집에서 힘겨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수술 직전 의료진으로부터 ‘증세가 심각한데 왜 바로 모시고 오지 않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며 “처음 의원에서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씨 가족의 사례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지방 의료서비스의 현주소다. 전문 의료인력 및 시설이 대도시와 수도권에 몰리면서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선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응급실이 없어서 치료 골든 타임을 놓치는가 하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서 원정 출산을 가기도 한다. 이미 ‘의료절벽’ 상황까지 간 지역도 허다하다.

인구 3만명 남짓한 충북 단양군에서는 2015년 4월 군내 유일의 종합병원인 S병원의 폐업으로 응급의료기관이 모두 사라졌다. 단양군은 이듬해 임시방편으로 군립 노인요양병원에 응급실을 마련,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순번제로 돌아가는 당직 의사 가운데 응급의료에 대처할 수 있는 신경외과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 명도 없다. 공중보건의를 포함한 의료진 6명 모두가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여서 급한 수술은 꿈도 못꾼다. 심장질환, 외과수술 등 응급 환자가 생기면 1시간 거리의 제천시나 강원 원주시로 보내야 한다.

군립의료원 설립 계획은 의료진 채용 문제로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단양군 관계자는 “사택 제공까지 내걸어도 군단위로 오겠다는 의사, 간호사가 없다. 의료진 구하기가 의료원 건립의 가장 큰 장벽”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방의 의료인력 부족 현상은 산부인과에서 두드러진다. 농어촌의 출산 인프라가 붕괴되고 있는 가운데, 강원도는 상황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힌다.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 병원이 2013년 31곳에서 지난해는 23곳으로 8곳이나 줄었다. 정선군 등 11개 군에는 아예 산부인과가 없다. 아이를 낳으려면 오가는 데만 2~3시간은 족히 걸리는 인근 도시로 가야 하는 처지다.

중소도시라고 사정이 나은 건 아니다. 최근 속초의 유일한 산부인과가 분만시설을 폐쇄하자 다급해진 강원도와 속초시가 속초의료원에 산부인과를 급조하기도 했다.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인프라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출산율 높이기 시책은 ‘말짱 도루묵’일 수 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고착화한 의료인력 양극화 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충북 충주의료원에는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없다. 1년 전 서울 등 대도시 의료기관보다 연봉을 더 주겠다는 조건으로 구인공고를 냈지만 지금까지 지원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의료원 측은 “호흡기 전문의가 없어서 소화기내과 등 다른 내과 전문의들을 주축으로 신종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별 치료가능 사망률(10만명 당, 2017년 보건복지부 자료)
시군별 치료가능사망률. 보건복지부 자료

지역간 의료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국민보건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치료가능 사망률’의 지역별 편차가 3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치료가능 사망률이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의 비율이다.

이 지표가 가장 낮은 서울 강남구는 29.6명인데 비해 충북에서 가장 높은 음성군은 86.3명이나 된다. 오지인 강원 양구군(92.0명), 경북 영양군(107.8명) 등과는 더 차이가 벌어진다.

면적이 넓고 교통이 불편한 경북은 치료가능 사망률이 심각 수준(61.2이상)인 곳이 12개 시군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과 충북은 각각 6개 시군에 달했다. 반면 서울ㆍ경기와 대전, 광주 등 수도권과 대도시는 평균 50 이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특단의 대책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의료서비스 양극화에 따른 피해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충북연구원 황명구(보건행정학) 박사는 “의료인력 불균형으로 인해 곳곳에서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농어촌 등 의료취약 지역의 공공의료서비스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증설과 정원 확대, 도시지역 은퇴의사 농어촌 배치, 전국 도립대에 간호학과 신설, 응급 전문의 처우 개선 등 복합적인 대책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전국종합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