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면밀 주시”… 中 국보법 강행 땐 홍콩 무역특별지위 박탈 경고
홍콩 민주진영 “국보법 결사항전” 선언… 주말 수 천명 대규모 시위
하나의 변수로 여겨졌던 ‘인권 문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조되던 미중 갈등 국면의 새 뇌관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카드를 뽑아 들자마자 미국은 인권 탄압을 내세워 대중 제재와 홍콩 특별지위 변경 등 맞불 작전을 예고했다. 홍콩 시민사회에선 지난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이후 ‘제2의 반중(反中) 시위’가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권 이슈가 미중 대립 전면에 돌출하면서 향후 국제질서의 재편 방향도 가늠키 어렵게 됐다.
미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현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 편집본을 게시했다. 중국 정부가 국보법 제정을 강행할 경우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에 대한 무역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재차 발신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홍콩의 자치 수준을 검증해 경제ㆍ통상 특별지위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관련 평가 보고서의 의회 제출을 연기했다고 밝히며 이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미국은 이미 다양한 대중 압박 수단을 테이블에 올려둔 상태다. 상무부는 전날 공안부 과학수사연구소 등 기업ㆍ기관 30여곳을 무더기로 거래 제한 ‘블랙리스트’ 목록에 포함시켰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탄압이 미 국가안보에 반한다’는 이유가 적시됐다.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극렬 반발하는 ‘위구르 인권정책 법안’도 내주 하원 통과가 유력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면 위구르족을 탄압한 책임자의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입국이 금지되는 등 고강도 제재가 부과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를 만난 분위기다. 인권 문제는 중국 배제를 주저하던 동맹국을 설득할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CNN방송은 이날 “미 정부가 홍콩 국보법 제정을 동맹들을 결집하는 계기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제여론은 중국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홍콩을 배신하고 새로운 독재를 펼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23개국의 고위 정치인 186명도 국보법 추진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5세대(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당초 유력했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배제토록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의 구상대로 착착 보조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수세에 몰린 중국은 해명으로 일관했지만, 국보법 제정만큼은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자회견에서 “홍콩은 중국 내정으로 외부 간섭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중미 양국이 합치면 모두에게 이롭고 싸우면 모두 손해”라며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홍콩 사무를 관장하는 한정(韓正) 중국 부총리도 전날 “국보법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소그룹’만 겨냥할 것”이라 말했다. 다만 그는 “세계 어디에도 국가 보안 관련 법률이 전혀 없는 곳은 없다”며 국보법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콩 야당과 범민주 진영은 “국보법이 제정되면 중국 정보기관이 홍콩 내 상주하며 반중 인사 등을 마구 체포할 수 있다”면서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실제 24일 오후 국보법 반대 대규모 시위가 열려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민주화 구호가 거리를 뒤덮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8인 이상의 집회나 모임이 엄격히 금지됐으나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들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이에 홍콩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서 또 다시 극한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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