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는 결혼한 지 5개월된 새신랑입니다. 결혼 준비 때부터 어머니와 많이 다퉜습니다. 아내와 어머니의 관계는 갈수록 안 좋아지고, 그 사이에서 너무 힘듭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집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지역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25년만에 집에서 독립해 자취했습니다. 그때쯤 아내를 만났고 7년 가까이 연애했습니다. 결혼할 때 신혼 집을 구하려고 친가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았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모은 자금과 대출로 해결하고요. 꼭 필요한 신혼살림은 아내가 2,000만원정도 써서 해결했습니다. 나머지 예단 등 불필요한 것들은 다 제외하고 싶었어요. 진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펄쩍 뛰며 모든 걸 다 하길 원하셨어요. 한복, 이바지 음식, 예단까지도요. 어머니는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시며 한평생 주부로 살아오신 분이에요. 자식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시댁 행사도 일일이 챙기실 만큼 가정에 충실한 분이세요. 어머니는 저의 결혼이 집안의 첫 결혼이라 남에게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어머니는 갈등의 원인을 아내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든 화살을 아내에게 퍼부었어요. 갈등이 심했지만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어요. 어머니는 모든 시댁 행사에 참여하길 원합니다. 맞벌이인데다 휴무일까지 서로 달라 날짜 맞추기도 어려운데도 못 오면 전화라도 미리 하라고 성화십니다. 아내는 불편하다고 합니다. 아내는 모든 시댁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도, 못 갈 때마다 일일이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고 하네요.
최근 부산에서 가족이 다 모여 저녁 먹는 자리에서도 갈등이 불거졌어요. 결혼을 앞둔 동생과 예비 제수씨가 함께 한 자리였어요. 문제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그간 쌓였던 것을 아내에게 퍼부은 겁니다. 예단 등 제수씨가 될 분과 제 아내를 비교하면서 아내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아내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되도록 어머니께 연락하지 않습니다. 2,3일에 한번씩은 전화라도 했었지만 아내가 힘들어하는 듯 해서 못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머니도 좋아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아내입니다. 제가 봐도 어머니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앞으로 그냥 어머니를 없는 셈 치고 남남처럼 살아야 하나 고민도 됩니다.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아무 문제없이 평안하게 잘 지내도록 하는 게 최우선의 효도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니 기준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저의 너무 큰 욕심일까요. 제가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동진(가명ㆍ33ㆍ회사원)
동진씨, 많은 분들이 동진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고, 키워지고,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사람이 생기지요. 그러면서 동진씨처럼 원가족(부모)과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모는 버릴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원가족과 갈등을 겪게 되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고통이죠.
특히 결혼을 준비하는 그 짧은 기간에 생긴 갈등으로 평생을 싸우고 살기도 합니다. 예단이나 예물의 의미는 뭘까요. 제 생각에는 아주 옛날에는 부모들끼리 자식의 결혼을 결정했잖아요. 지금과 달리 집안과 집안이 서로 맺어주는 경우가 많았고,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이 시집을 가면 남성 집안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안끼리 인사를 나누고, 딸을 시집 보낸다는 의미를 담아 예물(예단)을 했단 말이죠.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아직도 부모님 세대에서는 여전히 이런 관습을 중요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시부모님이 예물 등 전통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을 자신들의 집안을 무시하는 거라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요. 격식을 갖춰야 비로소 자신들을 어른으로서 대접하고, 집안을 존중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격식을 갖추지 않으면 “네가 우리 집안을 무시하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만만하게 보는구나”라고 받아들입니다.
동진씨의 어머니도 예물의 의미가 우리 집안을 무시하지 않고, 어른을 공경하고, 제대로 대접하는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물을 안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인데, 격식을 중시해서 마음이 멀어지는 앞뒤가 뒤바뀌는 상황이 된 거지요. 한 달에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보고 싶어서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게 중요한 건데 격식이라는 틀을 만들어 하루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그 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만 따지다 보면 정말 마음이 있는지 여부는 전혀 보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깁니다.
누구든 강요 받으면 하고 싶던 마음도 사라집니다. 결혼 전에는 격식을 요구 받지 않다가 결혼이라는 의례를 치르면서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잘 하라는 마음을 요구 받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집안을 무시하고,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게 되어 갈등이 생깁니다.
동진씨 어머니도 결혼준비 과정에서 ‘예물=집안을 존중하고, 부모를 공경한다’라는 개념이 뿌리깊게 머릿속에 있었을 거예요. 비유하자면 예물이 트로피였을 거예요. 물질적인 돈의 가치라기보다 상징과도 같았을 겁니다. 자식에게 헌신한 데 대한 인정, 집안살림을 평안하게 잘 이끌어온 데 대한 인정의 의미로 트로피를 받고 싶은 거지요. 그리고 마음 안에 고집스러운 체면도 있었을 거예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예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요.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오면 시어머니들은 무의식적으로 집안의 균형과 서열의 평정상태가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없던 원칙을 만들어서 며느리가 원칙을 지켜 자신의 통제의 틀로 들어오냐, 안 들어오냐에 따라 들어오면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안 들어오면 대립 관계로 설정해, 결사적으로 싸우려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동진씨가 결혼 후에도 집안 행사 문제로 사사건건 갈등이 생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물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생긴 틀이라면 결혼 후에는 집안 행사와 전화 걸기가 틀이 된 겁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가족 행사를 잘 챙겨야 트로피처럼 상징적으로 ‘네가 나를 무시하지 않고, 우리 집안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구나’내지는 ‘우리 집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받아들입니다.
동진씨, 가족은 논리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서적인 관계입니다. 어머니가 갖고 있는 개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싸움이 되지요. 아내가 예물이 왜 필요한지, 가족행사에 왜 매번 참석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갈등을 해결할 수 없어요. 사랑해서 결혼해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이해의 폭이 좁아서 싸우는 것처럼 어머니하고 아내도 그런 면이 있을 거예요. 서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좀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는 면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갈등이 심해져 아내의 마음을 돌이키기가 어렵다면, 동진씨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행인 것은 동진씨와 아내 사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거에요. 어머니가 갈등의 도화선이 돼서 부부의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는데, 동진씨가 어머니의 편을 지나치게 들지 않고, 아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네요.
동진씨가 양쪽을 조율할 수 없다면 당신에겐 아내가 더 중요하고, 두 분이 행복하게 사는 게 우선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니 우선 부부가 서로 생각을 많이 공유해서, 많은 부분에 공감과 합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합니다. 남편이 마음으로만 고민하지 말고 아내에게 이 부분은 어머니가 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얘기를 하고, 그래서 당신이 속상할 거다라고 공감을 해주고, 나는 어머니처럼 집안행사를 다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시댁 행사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하는 게 좋을지 같이 얘기하세요. 동진씨가 요구를 하기 보다는 아내에게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세심하게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내한테 당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 공감과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듯,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느 정도 도리를 지키는 게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와의 단절은 자주 부딪혀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 순 있으나, 그 역시 큰 고통입니다. 부모와 단절하면 그 역시 동진씨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현명하게 잘 대처한다면 부모와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거에요.
어머니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더라도 동진씨가 전화를 하고, 그 과정에서 때때로 어머니에게 집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과 신경을 많이 기울이지 못하는 게 어머니를 만만하게 보고 집안을 무시해서가 아니라고 알려드리는 게 좋습니다. 좀 더 노력해서 매월 초에 집안의 모든 경조사를 미리 파악해 어머니에게 참석 여부를 알려주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편이 될 겁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할 때는 아내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모자 관계에서, 어머니가 요구하는 것들로 동진씨가 힘들다는 얘기를 전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는 얘기에 대해 동진씨가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중간에 말을 끊고 상황을 변명하거나, 따지지 않고 어머니가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들어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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