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코로나 탓 손실, 유화는 신사업으로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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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 코로나 탓 손실, 유화는 신사업으로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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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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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국제유가 급락이란 사상 초유의 대형 악재가 덮친 올해 1분기 정유와 석유화학 업계의 성적표는 엇갈렸다. 정유업계에선 사상 최대 규모의 4조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반면, 석유화학 업계에선 비교적 선전한 실적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원유에 뿌리를 둔 두 업종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를 살펴봤다.

◇코로나 수혜에 다양한 신사업으로 활로 찾은 석유화학

매출액 기준, 석유화학 업계의 상위 4개(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사는 올해 1분기 매출액 13조9,652억, 영업이익 4,426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가전 등 전방산업의 공장 가동률 저하에 따른 수요 감소를 감안하면 선방한 결과다. 이는 회사마다 주력 품목이 다르다 보니 수요 절벽에 대한 위험이 분산된 데다, 일부 제품의 경우엔 코로나19 수혜까지 얻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파라자일렌 등 석유화학 산업의 원재료인 제품을 주력으로 한 롯데케미칼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 영향으로 31분기 만에 분기 실적이 적자로 전환했다. 반면 합성고무, 합성수지 등에 특화된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1분기 10.9%의 영업이익률로 지난해 1분기 이후 4분기 만에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737.1%나 급증했다.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수요가 폭발한 의료용 라텍스 장갑이 효자 노릇을 한 덕분이다.

2020년 1분기 주요 정유 석유화학 업계 실적-김문중 기자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고무장갑 수요는 2019~21년 동안 연평균 10%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은 니트릴 장갑의 원료인 니트릴부타디엔(NB) 라텍스 생산량에서 세계 1위(58만톤)와 3위(27만톤)를 차지하고 있다.

손세정제의 원료로 사용되는 아이소프로필알코올(IPA)을 생산하는 LG화학과 이수화학, 마스크의 부직포 및 이어스트램(마스크 줄)에 쓰이는 부직포·스판덱스를 생산하는 효성, 코오롱 등 섬유제품을 주력으로 한 석유화학 회사들도 코로나19 수혜를 봤다. SKC는 병원·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안면 가리개(페이스 쉴드), 구강청결제, 특수포장재 등의 수요 증가로 다른 업종과는 달리 오히려 2분기 이후 실적이 향상될 전망이다.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업에서 탈피, 영역 확장을 통해 성장하는 업체들도 눈에 띈다. 지난 1월 석유화학·태양광·첨단소재 사업 부문을 통합해 새로 출범한 한화솔루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5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특히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분야는 11.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도 갈아치웠다. 증권업계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그린 뉴딜’ 정책 덕분에 태양광 사업이 더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외에도 2차 전지, 백신 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외부 요인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줄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각 기업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은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연구진의 모습. LG화학 제공

◇가만히 있어도, 만들어도 손해 보는 정유

기업들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을 종합하면, 주요 정유4사는 정유사업(석유화학·배터리 등의 사업부문 제외)에서 21조4,725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4조4,2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30%,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도 20%의 영업손실률을 보였다. 세금과 인건비, 설비 운영자금 등을 포함한 기본적인 지출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20~30%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는 건 팔수록 손해만 본 셈이다.

정유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석유화학의 원재료로 쓰이는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제외하면 휘발유, 경유, 등유, 벙커C유 등 대부분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의 원료로 쓰인다. 보통 국제유가가 급락하면 수송용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이 증가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이동제한이 이뤄지면서 수송용 에너지 수요가 얼어붙었다.

산업의 특성상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석유제품의 공급은 지속되는데, 수요가 말라버리면서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로 전환한 지 오래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달 원유의 배럴당 정제마진은 -2.2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할 때마다 2.2달러씩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업계에서 “만들수록 손해”란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에선 손익분기가 되는 정제마진을 배럴당 4, 5달러로 점치고 있는데, 지난해 10월(4.1) 이후 7개월 동안 줄곧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있다.

또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정유사들이 상대적으로 고가에 매입해 비축해 온 원유 재고의 평가 가치가 하락한 것도 대규모 손실의 원인이 됐다. 가만히 있어도, 공장을 돌려도 손해를 면치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문제는 구조적인 한계가 드러났지만, 정유업계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장치 산업의 특성상 설비를 고도화해 정제 효율을 높이거나, 에틸렌 등 기초적인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진출한 사례가 전부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실현 가능성을 떠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정유사업 이외의 신사업에 도전해보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정유업계는 기초 석유화학 등 신사업 진출 영역이 제한돼 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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