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회의장들은 쟁점 법안 처리 시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 정치적 부담을 피하곤 했다. 왼쪽부터 2009년 7월 미디어법 상정 당시 야당 의원들이 몸으로 저지하는 모습. 의장석엔 여당 소속 이윤성 부의장이 앉았다. 가운데는 2011년 11월 한미FTA 비준안 처리 때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정의화 부의장을 향해 최루가스를 뿌리는 장면. 최초 여성 부의장으로 확정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의장이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반면 국회부의장은 9위다. 그래도 국회 사무처가 주는 혜택은 의장 못지않다. 세비가 오르고 집무실과 고급 차량이 제공된다. 비서실장을 포함한 비서진도 꾸릴 수 있다. 국회법상 부의장의 임무는 ‘의장 직무대리’가 기본이다. 의장에게 뜻하지 않은 사정이 생겼을 때 부의장 2인 중 의장이 지정하는 이가 본회의 사회를 대신 본다. 의장이 심신 상실 같은 사유로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경우엔 의원 수가 많은 교섭단체(원내정당) 소속 부의장이 직무를 대행한다.

□ 그런 ‘의장 대리인’이 전면에 나설 때가 있다. 긍정적인 일보다 그 반대가 많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에 야당이 극렬하게 반대하던 상황. 당시 박희태 의장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직권상정과 질서유지권 발동을 결정했다. 그러곤 지방 체류를 이유로 본회의 사회권을 정의화 부의장에게 넘겼다. 비준안은 정 부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통과됐다. 그 바람에 정 부의장은 박 의장 대신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던진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쏟아야 했다. 2009년 7월 22일 여권이 주도한 ‘미디어법’ 처리 때도 김형오 의장 대신 여당 소속 이윤성 부의장이 의장석에 앉았다.

□ 이처럼 여야 대립이 극에 달할 때 의장들은 종종 부의장에게 의사봉을 슬쩍 넘겨 정치적 부담을 피했다. 부의장이 소극적이나마 완충역을 한 적도 있다. 2016년 정세균 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를 촉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비판했다가 새누리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추경안은 발이 묶였다. 결국 정 의장이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기로 했다. 새누리당도 이를 받아들여 파행은 끝났다.

□ 4선에 성공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정 사상 첫 여성 부의장으로 확정됐다. 그는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약속했다. “여성 리더십으로 여야 간 소통의 가교가 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엔 임기 후반 개혁 과제가 산적하다. 보수 야당과 갈등도 뻔하다. 대립 국면에서 여당 소속 부의장이 또다시 ‘의장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스스로 최초의 의미를 희석하는 꼴이 될 테다. 김 의원이 초심대로 부의장의 새로운 리더십을 만드는 데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