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파출소’ 50t급 해경 ‘P’ 경비정
2박3일간 연안 구역 머물며 만능 해결사 역할
마약단속ㆍ화재진압ㆍ인명구조ㆍ긴급출동 서비스까지
“연안 1구역 선박 충돌사고 발생. P-10정 즉시 이동 바람”
지난 8일 새벽 인천해양경찰서 상황실로부터 긴급통신을 전달받은 P-10정이 곧바로 팔미도 동쪽 1마일 해상으로 출동했다. 어선끼리 충돌하면서 350m 길이의 어구가 손상됐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현장 상황을 정리한 P-10정은 또 다른 임무수행을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규모는 작지만 기동성이 좋은 50t급 P정은 ‘바다 파출소’다. 한 번 출항하면 2박3일간 연안 관할 구역에 머무는데, 정장을 포함해 9명의 대원들이 선박 충돌사고부터 선상 폭력, 여객선 내 성폭행, 마약 밀수, 어구 및 양식장 절도 사건 조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육지와 달리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이다 보니 치안업무 외에도 임무가 다양하다. 대원들은 선박 화재 현장에선 소방관으로, 침몰하는 어선에서 선원을 구조하는 구조대로, 기름 유출이나 적조 등 해양 오염 현장에선 오염원 제거반으로 변신한다. 심지어는 연료가 바닥난 어선에 연료를 공급하는 긴급출동 서비스까지,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한다.
인천해양경찰서가 보유한 22척의 선박 중 P정이 7척으로 가장 많다. 연안에서 발생하는 해상 사건 사고가 그만큼 빈번하다는 의미다. P정보다 큰 300t급과 100t급 경비정이 각각 2척과 3척이고, 공기부양정(4척)과 특수정(2척) 연안구조정(4척)이 각각의 특화된 임무를 수행한다. P는 ‘Patrol vessel’의 약자, 숫자는 지역구분 없이 건조 순서에 따라 배정된 일련번호다. 선박 명칭에 숫자 ‘4’를 쓰지 않으므로, P-10정은 국내에서 9번째로 건조된 50t급 경비정이다. 대한민국해경은 총 100여대의 P정을 보유하고 있다.
경력 22년의 정장 배극선 경위는 “P-10정의 가장 큰 임무는 연안에서 해상 치안 유지”라며 “해상사고 발생 시 인명구조와 어선 및 여객선, 낚싯배, 레저보트 등 다중이용 선박의 안전 관리도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P-10정 대원들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선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에 극도로 민감한 데다 환자 이송 임무까지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도서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이송하면서 전 대원이 방역복을 착용했다. 이송 후에는 함정 전체를 샅샅이 소독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원들은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고는 있지만 봄어기(봄철 고기 잡는 시기)와 꽃게잡이 철을 맞아 출어 선박이 늘어난 만큼 사건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사람이 한 걸음 갈 때 바닷물은 다섯 걸음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상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진다”며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 낚싯배에서 음주는 절대 금지이며 구명조끼를 반드시 착용할 것”을 당부했다. 꽃게잡이 어선이 많은 인천 지역 특성상 그물을 올리다 꽃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철제 와이어가 끊어질 경우 선원들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수평선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던 18일 오후 2시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 정박한 P-10정에서 대원들이 배에 실린 장비들을 선착장 바닥에 펼쳐 보여줬다. P-10정보다 큰 선박으로 옮겨 타는 데 필요한 줄사다리를 시작으로 심장마비 등 응급 환자를 위한 자동제세동기(AED)와 산소소생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박 화재 진압 시 착용하는 방화복과 도끼, 익수자를 구조하는 구명환도 부두 바닥에 차례로 놓였다. 오염원 제거용 노란색 그물과 선박에 접근 시 충격을 줄이는 펜더, 사고 선박에서 물을 퍼내는 데 쓰이는 배수펌프 등 30여 종 80여 개의 장비가 모두 펼쳐진 후 정장과 대원들이 하늘에 떠 있는 드론을 보며 포즈를 취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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