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레터] 10년만에 돌아온 과거사위원회 총정리 
더불어민주당 진선미ㆍ박주민ㆍ김영진, 민생당 장정숙 의원 등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관련 단체와 함께 ‘과거사법 20대 국회 내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죠.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고인을 기리고 과거를 기억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내려 노력합니다. 지난 일이라고 덮어둔다면 갈등과 반목만 계속될 뿐 끝내 용서와 화해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과거사위)’가 10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는 까닭도 일제 강점기와 혹독한 냉전시대, 군사독재 시대의 어두운 유산을 마냥 묻어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겁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과거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출범하게 될 이번 과거사위는 사실 ‘시즌2’라고 볼 수 있는데요. 2005년 12월 출범했던 1기 과거사위는 4년 2개월 동안 1만1,1172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공식 활동을 마쳤습니다.

 ◇과거사위, 왜 또 만드는 건데? 
2005년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었던 과거사위는 신청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가, 홍보 부족으로 많은 사람이 미처 접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미신청 인원이 파악된 것만 약 3,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입법 시 활동 기한(2010년 4월)이 지나도 필요한 경우 ‘2년 연장’을 할 수 있다고 정했지만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딱 두 달 연장을 허락했어요.

이런 이유로 과거사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로도 관련 유족과 피해자들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계속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에 따르면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가운데 1기 과거사위가 확인한 희생자는 1만6,500여명, 단 1.5%에 불과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족 등이 과거사법 개정을 꾸준히 호소한 결과 19대 국회에서도 13개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죠. 없던 일이 돼 버린 겁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5일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서 20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 등을 위한 과거사법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20대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7년 11월 시작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의 노숙 농성 덕분입니다. 피해 생존자 최승우(51)씨는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과거사법 처리를 요구하며 24일 동안 고공 단식농성을 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서 또 한 차례 단식에 들어갔어요.

유족과 피해자들의 호소 끝에 여야는 7일 마침내 과거사법 개정안을 20대 국회 임기 안에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최씨는 같은 날 “너무 기쁘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국가폭력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뭘 조사하게 되는 거야?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구타, 살해 사건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 한국일보 1987년 2월 3일자 신문.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시 돌아 올 과거사위 역시 앞선 위원회와 활동 취지는 같아요. 지난 1기 과거사위에서 조사가 완료되지 못했거나 미진했던 사건들을 비롯해 추가적으로 드러난 국가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는 겁니다.

이번에 새롭게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사건은 역시 형제복지원 사건인데요. 국회는 앞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안을 과거사법 개정안에 포함해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죠. 1975년~1987년까지 부산 사상구에서 운영되던 형제복지원은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불법으로 납치해 강제 구금했습니다.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살인 등 반인권적인 일들이 난무했던 이 시설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이릅니다.

형제복지원의 또 다른 피해생존자 한종선(45)씨는 앞서 펴낸 체험수기 ‘살아남은 아이’에서 “먹을 게 없어 지네와 생쥐까지 잡아 먹었다”며 “엄청나게 맞아 병원에 실려가고 안 돌아오면 너희들도 말 안 들으면 그 꼴 난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중노동ㆍ성폭행… 산에 무덤이 하나씩 늘어났어요” 한종선씨 외로운 투쟁)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해당 시설을 운영했던 박인근 원장이 구속되면서 실상이 알려지는 듯 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은폐ㆍ축소에 박 원장은 국고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처했고, 불법감금 부분은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후 27년만인 2012년에야 피해자들의 증언이 하나 둘씩 터져 나왔죠. 때문에 2010년 활동을 종료한 과거사위에는 사건 접수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새로 조사하는 다른 사건들도 있다면서? 
일제강점기인 1942년 5월 조선소년령 발표에 따라 선감도에 설립된 ‘선감학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2년까지 존재했던 경기 안산의 선감학원, 1960~70년대의 서산개척단 등 새로 불거져 나온 인권유린 사건들도 과거사법에 통합됐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5월 조선소년령 발표에 따라 선감도에 설립된 ‘선감학원’은 광복 이후 경기도가 인수해 1982년까지 도심 내 고아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한 곳인데요.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40년 동안 4,700여명의 소년들이 강제 수용돼 염전과 농사, 축산, 양잠 등의 강제 노역에 투입됐습니다. 일제가 물러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구타와 영양실조 등 인권유린이 빈번해 섬을 탈출하려던 소년들이 바다에 빠져 숨지기도 했는데, 그 숫자와 정확한 사망 이유 등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삼청교육대의 원조로 불리는 충남의 ‘서산개척단’은 5ㆍ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이 전국에서 인부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와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인 곳입니다. 당시 강제 수용된 인원은 지금까지 파악된 규모로만 1,700여명. 새벽 6시부터 하루 종일 강제 노역에 시달린데다 모진 매 타작에 다치거나 병이 들면 버려지다시피 했고, 억울한 목숨들이 수시로 죽어나갔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지만 이 역시 진상 규명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실과 화해’ 이뤄질까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등을 위한 과거사법 처리를 요구하며 5일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오른쪽)씨가 7일 오후 농성을 풀고 지상으로 내려온 뒤 4.9 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사법 개정안은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입니다. 다만 미래통합당의 요구에 따라 과거사위 위원 구성에서 정부 여당 몫을 줄이고 조사 기간 역시 4년에서 3년으로 축소했어요. 청문회 역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비용 문제를 들어 국가 배상 의무를 담은 개정안 36조를 빼자는 야당 요구에 따라 해당 조항이 막판에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20여곳의 피해자 단체들은 배ㆍ보상 문제가 아니더라도 빨리 처리해 주길 원한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합니다. 개정안 처리가 또 좌초될까 우려한 탓이죠.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일단 개문발차(開門發車)하는 과거사위는 수십 년, 길게는 백 년도 넘게 맺힌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서산개척단 피해생존자 정영철(77)씨는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살았으니 ‘정부가 잘못했다’는 소리만 들어도 만분이 풀릴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진상 규명은 처벌보다 역사를 바로 기억하고 결국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을 겁니다.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40주년을 맞은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말했는데요. 다시 시작되는 과거사위가 용서와 화해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기를 바라봅니다.

☞여기서 잠깐

 ‘1기 과거사위’ 의 성과는? 

강기훈(왼쪽 사진)씨가 1991년 고(故)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법정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강씨는 16년 만인 2014년 2월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기 과거사위는 접수사건 1만여건 중 8,000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했습니다. 주요 조사 대상은 항일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국외동포사, 반민주적ㆍ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 유린, 폭력ㆍ학살ㆍ의문사 등이었는데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사해 국가에 사과와 재심 등의 조처를 한 것은 대표적인 공적으로 꼽힙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 강씨가 후배 김기설씨에게 분신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쓴 혐의로 옥살이를 한 사건인데요. 과거사위는 16년만인 2007년 “김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고, 서울고법은 2014년 2월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것이라고 판단한 1991년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판결했어요. 대법원은 다음해 5월 이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또 정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ㆍ조작한 사실과 수사기관이 재일교포 출신 유학생인 김정사씨를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사실 등을 확인하고 국가가 피해자 유족과 당사자에게 사과하도록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 납북됐다가 귀환하고서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은 어부의 억울함도 장기간의 조사와 자료 수집을 통해 풀어줬죠.

또 한국 전쟁 당시 좌익 사상자로 몰아 수천 명을 대량 학살한 ‘보도연맹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해 외신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마산지역 보도연맹원 6명은 올해 2월 사형 집행 70년만에 재심을 통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 받기도 했어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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