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 따른 최악의 금융위기에, 무기 구매까지 차질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사우디는 무기 구매로 국제적 입지를 다져온 터라 각종 개혁 조치를 통해 국가 개조 작업에 나선 최고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입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사우디의 금융위기가 가중되면서 새로운 무기 계약은커녕 기존 계약까지 미뤄야 할 상황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지난해 기준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약 62억달러(약 7조5,968억원)를 무기 지출에 사용한 국제 무기시장의 큰 손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사우디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기 구입 비중은 8%로 미국(3.4%)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하지만 사우디의 무기 쇼핑은 당분간 대외 변수 탓에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코로나19발(發) 석유시장 및 글로벌 경제 붕괴로 사우디는 전례 없는 금융위기에 맞닥뜨렸다. 폭락한 유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이달부터 산유량을 850만배럴로 감축하기로 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 소속 국가 중 가장 많은 감산 할당량을 떠안은 상황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의 브루스 리델 선임연구원은 “(사우디의 무기 구매 축소는) 한 시대의 종말이 왔음을 의미한다”라고 평가했다.
이에 무기 대량 구매를 고리 삼아 서방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온 사우디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무성하다. 가디언은 2018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망 발표와 관련, 사우디 정부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사실을 주목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 취소는 미국인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잃게 할 수 있다”며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취소하라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세계무기거래 전문가인 앤드류 파인스타인은 “무기를 사들이면서 서방 강대국과의 관계도 함께 구매하던 사우디의 의도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빈살만 왕세자의 야심도 꺾일 위기에 놓였다. 사우디 재무부는 11일 정부 관련 사업 지출 축소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빈살만의 ‘비전 2030 계획’ 사업도 포함됐다. 원유 수출에 의지해왔던 사우디 경제 구조를 관광산업 등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목표였지만, 역설적으로 종잣돈이 돼야 할 원유 가격이 폭락하면서 개혁을 주도한 빈살만도 책임 논란을 비껴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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