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밥을 왜 챙겨? 네 처지에."
-"내 처지 같아서 챙긴다! 축복도 못 받고 태어나서 밥도 못 먹으면 너무 서럽잖아."
엄마가 묻고 딸이 대답한다. 모녀의 대화치곤 상당히 건조하다. 언뜻 보기엔 이상한 모녀지만 자세히 보면 예쁜 사람들. '초미의 관심사'는 그런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다.
1990년생인 치타(김은영)와 1986년에 데뷔한 조민수가 모녀 호흡을 맞춘다고 했을 때, 다소 의아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이 피어 올랐다. (이미지상으로) '역대급 센 언니들'의 만남이기에 이들이 만나 뿜어낼 에너지가 무척 궁금했던 듯하다.
지난 18일 베일을 벗은 '초미의 관심사'는 예상보다 훨씬 '착한' 영화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남연우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서다.
돈을 들고 튄 막내를 찾기 위해 의기투합한 모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거친 인물들처럼 보이지만 아픔을 애써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 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매우 유니크(?)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싱글맘 밑에서 자라다 중학생 때 도망치듯 독립한 순덕(치타)은 블루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인디 가수다. 작은 술집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가지만 실력만은 남부럽지 않다. 고등학생인 여동생 유리와 함께 살며 뒷바라지하는 책임감 많은 언니이기도 하다.
그런 순덕 앞에 갑자기 나타난 엄마(조민수)는 유리를 찾아야 한다며 방방 뛴다. 갑자기 엄마와 언니의 돈을 훔쳐 달아난 유리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영화는 모녀의 시선으로 92분간 유리의 행방을 쫓는다.
입만 열면 욕에,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성격 급한 엄마와 매사에 시크하고 차분한 딸의 조화가 이색적이다. 이들이 나누는 현실적인 대화에서도 웃음이 터진다. 오래 떨어져 산 만큼 모녀의 관계가 살갑진 않지만 툭탁거리는 모습 속에서 잔잔한 애정이 묻어난다.
남연우 감독은 치타에게 찰떡 같은 캐릭터를 맡김으로써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대사가 많진 않지만 치타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캐릭터에 녹아 들었다. 과하게 욕심내어 연기하지 않아서 절제된 모습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그의 노래 실력도 아낌없이 드러난다.
베테랑 배우 조민수의 에너지도 놀랍다. 쉴 새 없이 악쓰고 웃고 울고 뛰어다니며 힘차게 극을 이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와의 케미도 훌륭하다. 깊은 연기 내공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단순히 재미만을 좇지 않는 반면 억지로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편견을 깨부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부추긴다. 소소한 웃음 뒤에 가슴 한 켠이 시큰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 오는 27일 개봉.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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