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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 중심의 교육 봉사 탈피…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지는 교육 상생”

입력
2020.05.19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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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기업 2.0] 사단법인 ‘점프’ 이의헌 대표 

이의헌 사단법인 '점프' 대표는 "점프가 아무리 좋은 모델을 갖고 있더라도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과 장학사업을 하는 장학재단이 없었으면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힘 있는 자리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이의헌 사단법인 '점프' 대표는 "점프가 아무리 좋은 모델을 갖고 있더라도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과 장학사업을 하는 장학재단이 없었으면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힘 있는 자리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상생의 가치. 누구나 쉽게 말할 순 있지만, 실제로 구현하긴 쉽지 않다. 경쟁 사회에 내몰려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걸 숱한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인 2015년의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는 자조로 가득했고, 스스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자도생’의 가치가 팽배했다. 이런 인식의 싹은, 태생적 불평등은 극복할 수 없다는 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을 기준으로 나뉘는 ‘수저계급론’이 당시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였을 정도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교육 소셜 벤처인 사단법인 ‘점프’(JUMP)다. 최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이의헌(45) 대표는 “처음 비영리 재단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비싼 돈 주고 공부해서 왜 사기꾼을 하려고 하느냐’는 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비영리 재단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0년간 꽤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고, 나눔의 선순환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사단법인 '점프'가 현대차그룹·서울장학재단 등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대학생 교육봉사단 'H-점프스쿨'의 한 교육 봉사자가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과외 지도를 하고 있다. 점프 제공
사단법인 '점프'가 현대차그룹·서울장학재단 등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대학생 교육봉사단 'H-점프스쿨'의 한 교육 봉사자가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과외 지도를 하고 있다. 점프 제공

 ◇미국에서 기자로 살아보니 비로소 보인 것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94학번인 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 “소위 한국 사회의 중산층 메인스트림에 살았다”고 말했다. 신방과 졸업생이 대개 그러하듯 그도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고, 2001년 미주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어려운 줄 모르고 자란 그가 통상 사회적 ‘갑’으로 분류되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으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취업 관문을 통과했더니 졸지에 ‘이주 노동자’ 신세가 됐다”며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자,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가 말한,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게 만든 기자로서의 경험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가 탈북자 취재 경험이다. 장애인 탈북자였던 서재석씨는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자로서 미국 시민권을 받은 첫 사례였는데, 서씨가 미국 국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한국 사회의 차별 때문이었다. 이 대표에겐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나고 자라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를 떠나는 이유가 차별 때문이라는 사실, 더구나 깐깐한 미국이 이런 이유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음은 아프가니스탄에 취재를 갔던 경험이다.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에 현지 취재를 갔던 그가 본 광경은 비참했다. 이 대표는 “그곳 아이들은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구체적으론 부모님이 정치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꿈을 꿀 수 없고 오직 생존이 꿈인 사회에서 살아야만 했다”며 “아이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 때문에 제대로 된 꿈마저 꿀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기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관찰자에 머무르던 그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갔다. 그리고 그가 진학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현재 ‘점프’의 창업 동료들을 만났다.

지난해 2월 H-점프스쿨 전국 통합 오리엔테이션에서 6기 장학샘들이 소그룹 멘토링 진행 중 현대차그룹 소속 사회인 멘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점프 제공
지난해 2월 H-점프스쿨 전국 통합 오리엔테이션에서 6기 장학샘들이 소그룹 멘토링 진행 중 현대차그룹 소속 사회인 멘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점프 제공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나눔의 선순환 

점프는 2011년 이 대표를 비롯해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6명이 함께 만들었다.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교육에서 찾자고 뜻을 모으면서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기존에도 교육 봉사는 존재했다. 하지만 오롯이 자발적 선의에 기반한 교육 봉사는 안정적으로 교사를 수급하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또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배우는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대표가 점프를 창업한 뒤 지역아동센터에 방문해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설명했을 때도 “석 달 동안 1주일에 1, 2시간 와서 친해질 만하면 떠나는 선생님은 필요 없다”는 얘길 들었다. 아이들이 “어차피 선생님들도 우리 버리고 갈 거 아니냐”며 “대충 시간 때우고 가시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배울 사람은 고려하지 않고 공급자 위주로 설계된 기존 교육 봉사 시스템이 빚은 폐해였다.

사전에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던 점프는 청소년-대학생-사회인 멘토가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사슬처럼 채워주는 ‘삼각 멘토링’ 모델을 설계했다. 대학생 봉사자의 봉사기간을 1년으로 고정하고, 활동 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또 교육 받는 학생은 선생님이 바뀔지언정 한 학생당 3~5년간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장학샘’으로 불리는 교육 봉사 참여 대학생들은 장학금과 사회인 멘토라는 두 마리 토끼로 사로잡았다. 단순히 입사원서에 적을 스팩 한 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꿀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교육 봉사에 참여했던 한 다문화 가정 출신 대학생은 봉사 경험을 토대로 석사 논문을 쓰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 지금은 도쿄 대학에 교수로 있으면서, 점프의 사회인 멘토로 활동 중이다. 이 학생이 가르쳤던 아동센터의 학생은 글로벌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해, 현재 점프가 현대차그룹·서울장학재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대학생 교육봉사단인 H-점프스쿨에서 ‘장학샘’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장학샘 출신으로 점프에 입사한 사례도 많다. 마치 무한히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육 봉사로 시작된 상생의 가치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구체적 변화들에 힘입어 지난해 점프가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가치는 100억원이 넘는다. 특히 점프의 대표 사업인 H-점프스쿨은 2018년 누적 수치 기준으로 ‘장학샘’ 592명이 18만6,880시간을 가르쳤고, 청소년 2,225명이 69만9,200시간을 배웠다.

점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청정지역(청년이 머무르는 지역) 프로젝트’를 2년 전 새로 시작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도시 청년을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구인난이 심한 지방 기업과 취업 연결을 해 주면서 새로운 선순환 고리 만들기에 도전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0년을 발판 삼아 새로운 10년, 그 이상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발전시켜 온 ‘삼각 멘토링’ 모델을 현대차그룹과 함께 베트남 등 해외로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또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현장 중심, 기업 중심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점프의 솔루션을 지역의 사회적 기업과 나누는 소셜 프랜차이징 및 컨설팅 사업도 계속 확장시켜 나갈 거고요.”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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